20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 소설집 <런던 스케치>를 읽다. 총 18편의 단편과 소묘(素描)를 담고 있다.
그녀는 영국인 부모를 둔 영국인이지만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영국의 식민지였다-에서 태어나 13세 이후부터는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영국으로 건너왔을 때 그녀는 삼십 세였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영국은 모국인 동시에 외국으로 비추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런던 스케치에서는 객관적 담담함이 느껴진다.
한편 그녀는 런던의 아름다움이나 도시적 특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런던을 매개로 도시와 현재를 그린다. 특히 그녀의 눈에는 의사 소통의 어긋남, 시선의 어긋남, 그로 인한 고독과 소외가 강하게 들어왔던 듯하다. 그렇기에 어린 소녀는 홀로 창고에서 아이를 낳아 버리고 후회하며(데비와 줄리) 어머니는 자기 딸이 장애아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장애아의 어머니), 운전자들은 좁은 길에서 서로 대치하며(원칙), 어머니와 딸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며(장미 밭에서), 사회복지부의 파업으로 구제수당을 받을 수 없어 막막해진 여성은 길에서 구걸을 하면서도 자신을 도우려는 자를 경계하며(사회복지부), 여성은 이혼 후 전 배우자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거나 결혼할 남자의 전 배우자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한다.(흙구덩이, 진실)-특히 ‘흙구덩이’와 ‘진실’은 여러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비튼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일들은 런던 외에 서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집이 한국에서도 읽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단편에 걸맞게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문체적으로 몇 가지 흥미로운 시도가 보인다. 시도라기 보다는 자유로이 썼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듯싶다. 그리고 한국 단편보다 결말 자체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도 좋다. 정말 우리 주변에 잠깐 솟아 올랐다가 사라지는 사건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사건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신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 82번째 권이다. 이 외에 도리스 레싱의 책 한 두 권이 더 포함되어 있는 듯한데 그것도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