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경성 – 전봉관 (살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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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이란 노래가 있다. 서울을 희망적으로 노래한 해방 이후의 노래로 기억하고 있다. 그 노래의 이미지를 느끼며 이 책을 선택했다. 즉, 럭키 서울 이전의 럭키 경성(樂喜京城)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특별히 경성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부제가 말하듯 일제시대에 투기 열풍을 탄 사람과 사회에 헌신한 사람,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근대 조선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나처럼 경성의 풍경을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 수 있다. 저자가 이런 제목을 사용한 까닭은 아마도 이전에 ‘경성기담’이라는 책을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연작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서울이 풍경을 보여주진 않지만 대신 이 책은 일제 시대 하의 흥미로운 사회 풍경을 보여준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 시대의 조선은 암울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제시대, 개화기를 주제로 최근 발간되는 여러 책들은 그 시대에도 모던 보이의 낭만이 있고 향락적 즐거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이 책은 그 시기에도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 있었음을 말한다. 책의 1부가 바로 그런 내용으로 꾸며져 있는데 부동산 투기 외에 미두(쌀), 주식 시장에서의 투기꾼들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한 밤의 꿈처럼 잠깐의 성공 뒤에 몰락했던 것을 보면 투기는 어느 시대에나 투기 이상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반면 2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대부분 서양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육이 부족했기에 국권을 상실했다는 생각에 학교를 지은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금광으로 성공해 농민들을 후원하려 했던 이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을 무조건 어릴 때부터 싹수가 있었다는 식의 치사 중심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저자의 기본 생각은 ‘훌륭해서 훌륭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일을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 하에 재산 축적 과정에 있어 부정한 면이 있었다거나 특별히 사회 공헌의 일념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닌 사람들, 그러나 결국 말년에 기부를 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혹자는 이들의 면모에 실망하거나 과연 훌륭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이런 내용을 저자는 팩션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신문 기사를 그대로 옮겨 사실성을 강조하면서 대부분을 소설처럼 서술한다. 그렇기에 읽기에 상당히 편하다. 저자의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이런 식의 인물 평전, 미시사 서술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읽기 쉬운 만큼 내용이 일종의 야사나 뒷이야기처럼 큰 무게감 없이 독자에게 다가가 그냥 지나갈 위험 또한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편하게 읽었지만 책 제목에 실망해서 그런지 사실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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