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윤상 등의 곡에 가사를 썼던 박창학이 쓴 책으로 라틴 음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윤상이 평소 남미 음악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냈던 것처럼 박창학 역시 라틴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그가 라틴 음악을 주제로 책을 냈다고 했을 때 나는 기존 클래식이나 재즈를 주제로 한 책처럼 적절한 개인적 감상과 추천 앨범을 주르륵 소개하는 정도의 글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객관적 깊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원래 라틴 음악을 주제로 한 책이 국내에 그리 소개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브라질 음악의 대략적인 맥락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딱딱하지도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게 차근차근 서술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은 라틴 음악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어떤 백과사전적인 내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저자가 가장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느껴지는 브라질 음악은 비교적 다양하고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아르헨티나를 다룬 부분은 아스토르 피아솔라의 탕고에 한정 되어 있으며 쿠바 음악은 전반적인 개관 이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즉, 저자가 좋아하고 또 잘 아는 부분만 솔직하게 썼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 외에 다른 남미 국가들의 음악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책을 보기 바란다. 그러나 브라질 음악을 잘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보기 바란다. 얻는 것이 참 많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음악을 듣는 것이 자기 만족에서 시작되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의 문화를 접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이 책에서 언급된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에 간 적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의 음악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 사전을 펴가며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하고 또 같은 방법으로 각국 음악의 역사를 앨범 부클릿이나 인터넷을 통해 살피며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하나의 아티스트를 넘어 그 국가 전체의 음악을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고 즐기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재즈를 들으면서 필요한 부분은 해외 사이트 검색에 의존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방법에 적극 공감한다. 스스로 찾아 듣고 스스로 느끼는 감상이야 말로 가장 최적의 감상법이다. 이런 감상 태도야 말로 음악을 단순한 위안거리를 넘어선 문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어떤 아티스트, 어떤 앨범에 독자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소박한 바람을 따라 나 역시 관심 가는 음악이 생겼다. 저자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내가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이 아닐는지. 나 또한 재즈 관련 책을 쓴다면 그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