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과 카페, 모던 보이의 아지트 – 장유정 (살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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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다 읽은 이 책의 내용은 일제 시대 카페와 다방의 성격과 실상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다방과 카페는 모두 차를 마시는 곳의 의미를 지니지만 일제 시대에는 좀 달랐다. 다방은 그대로 차를 마시는 공간이었고 카페는 여급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다방이 카페고 카페는 룸살롱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기에 당시의 시선은 다방에게는 비록 서양에서 들어 온 문화라고는 하나 차를 마시며 문화를 논하고 정신적 고양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았고 카페는 인간의 욕망과 퇴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보았다. 실제 당시 다방은 주로 예술가들에 의해 운영되며 많은 예술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場)의 역할을 했으며 카페는 ‘에로’를 팔고 또 그 안에서 여러 추악한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고 교수는 밝힌다. 그러면서 카페의 여급에게 더 많은 시선을 보내며 그녀들의 사회적 위치, 그녀들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편견을 말한다. 이러한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면 결국 카페의 여급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바로 그 ‘술집 여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다방과 카페의 형성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방에서는 주로 클래식-대중 가요도 있기는 했다-을 틀었다면 카페에서는 재즈를 많이 틀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재즈가 막 스윙의 전성기를 맞으며 팝 음악 자체였던 것을 생각하면 카페에서 춤을 추기 위해 재즈를 주로 틀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위세대가 말하곤 하는 ‘재즈는 퇴폐적이다’라는 생각이 이러한 카페의 퇴폐적 이미지와 맞물려 형성된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 즉, 재즈는 퇴폐적이다 라는 것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유교적 관습이 강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교수는 카페와 다방을 이야기 하며 이 두 공간이 당시 피폐했던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의 공간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카페에는 신연애를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다방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속물적 성향의 무위도식자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일제 시대의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분명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조직 폭력배와 카페와의 관계, 그 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치정 사건에 관한 소식들은 오늘의 뉴스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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