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 – 임석재 (한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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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한국 건축 관련 책을 쓰고 있는 임석재 교수의 새로운 책이다. 이 책은 한옥을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그래서 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의 부제 ‘창으로 만들어내는 한옥의 미학’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꼭 한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그것이 마치 인공적인 그림처럼 느껴질 때를 경험하곤 한다. 그것은 사각의 창틀이 하나의 액자처럼 풍경을 가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한 발짝 뒤에서 그 창틀과 안에 담긴 풍경을 같은 층위에서 인식할 때 생긴다. 아주 독특한 미적 경험을 하는 순간인데 저자는 한옥의 창과 문을 통해 밖과 안을 볼 때 생기는 이러한 미적인 감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옥에서의 경험이 다른 서양식 건축과는 다른 보다 깊고 다양한 미적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미닫이와 여닫이로 구성된 한국 창틀의 독특한 구조, 그래서 조작에 따라 같은 외부를 다른 정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창틀, 문틀의 격자무늬와 창호지 마감으로 인한 빛의 효과, 그리고 문과 문이 이어지는 한옥의 독특한 구조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저자가 예로 제시한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 한옥에서 밖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게 정말 독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외부와 한옥의 창틀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차경(借景)’-간단하게 창,문틀 안에 풍경을 가두는 것-, ‘장경(場景)’-차경을 넘어 풍경이 하나의 큰 무대처럼 다가오는 것, ‘자경(自景)’-창 안에 집의 다른 부분이 풍경으로 들어오면서 관조적 반성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눈다.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창의 겹침, 창 자체가 족자처럼 풍경이 되는 현상, 창과 풍경의 하나됨을 이야기하고 여러 창들이 모여 몽타주, 콜라쥬, 바로크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은 단지 한옥에 산다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바라보는 내가 한옥의 문과 창이 풍경과 어우러지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더 아름답게 보기 위해 다양한 시점, 관점 변화를 시도할 때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 표지에 나온 저 사진 속 공간은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그림 세 점이 될 수 있고 저렇게 다양한 그림이 모여 복합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바로크적 풍경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풍경들은 조금은 한옥과 풍경 모두에서 멀어진 상태, 객관화된 상태에서 둘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깊이의 공간이 하나의 평면에 모이는 사진과도 같은 매개에 의해서 말이다. 이처럼 감상자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요구되기에 ‘풍경놀이’라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이러한 풍경놀이를 즐기며 저자는 풍경놀이가 가능한 것이 너와 나의 대립적 구분을 거부하고 하나됨을 지향하는 한옥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교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모두 열리고 젖혀 사방이 트여 자연과 하나된 듯한 대청처럼 있다가 겨울이 되면 모두 닫혀 완벽한 공간을 형성하는 한옥 창(문)의 용도를 생각할 때 그렇다.

보통 고가에 가게 되면 어떻게 건축되었으며 공간 활용이 어떤가 등에 신경을 쓰기 쉽다. 그런 것도 한옥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지만 이런 시선에 따라 변하는 한옥의 풍취를 즐기는 것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더 용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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