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김우창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정한 접근은 하지 못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그에 대한 연구서 한 권을 골라 20여일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유랜 시간 김우창 선생의 글을 읽고 연구해 온 문광훈 선생의 두 번째 김우창 연구서다.
김우창 선생은 한국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문학자/철학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 했다. 그의 철학은 서구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에서 출발하여 동양의 고전 철학을 아우른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복잡한 듯 하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고 또 그러면서 다소 정리가 안된 복잡함이 있다. 그는 먼저 데카르트의 ‘이성’을 발전하는 이성으로 생각을 해본다. 즉, 부단한 반성을 통해 조금씩 그 외연을 확장하는 이성이다. 그렇게 부단한 반성을 통해 투명한 내면을 확립할 수 있고 나아가 이성 자체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너머의 이질적인 것과 충돌하면서 이를 수용하며 외연을 확대하다 보면 이성은 개인을 넘어 사회를 아우르는 보편 이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보편 이성은 다시 개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반성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보편 이성은 완성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보편 이성 또한 끊임 없이 한계와 그 너머의 이질적인 것을 만나 다시 변화할 것을 요구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불변하는 하나의 고정된 보편 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요동치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이르는 아주 짧은 순간이 연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보편 이성의 형성 과정에 대한 정리를 기반으로 그는 내면성의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의 문제를 건드리고 또 이성을 감성과 통합하여 마음으로 발전시켜 이것으로 실천철학을 발전시킨다. (정리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렇게 거칠게 마감한다.)
이러한 김우창의 철학은 사실 가장 기본적으로 반성을 통한 개인의 내면성의 자기 쇄신이 중요하다. 투명한 내면을 지닌 개인들의 삼투적 소통과 상호 의존을 통한 보편 이성, 도덕의 성립, 이를 통한 이상적 사회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사유에는 화이트헤드, 하버마스, 메를로 퐁티, 헤겔 등의 여러 철학자들의 사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자리잡고 있다. 아마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철학은 모든 것을 통합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즉, 개인과 사회, 이성과 감성 등이 대립되지 않고 서로 삼투하며 하나가 되어 변증법적으로 계속 발전하는 것은 그가 크게 형이상학과 실천 철학으로 나뉘어진 세계 철학의 이원적 발전을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하나로 만들려 한 결과라는 것이다. 아마 이 부분이 김우창의 철학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인 것이다. 한편 이런 그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전제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인간은 계몽하면 누구나 합리적이고 공평해 질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끊임 없이 반성하면 투명한 이성을 얻을 수 있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김우창의 철학을 알아가다 보면 저자가 상당히 깊은 연구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서술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일단 저자는 김우창의 철학을 거시적으로 검토하여 메타적 이론을 발견하려 한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김우창의 철학의 역동적인 측면을 글로 드러내는 데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더욱이 김우창의 저작을 시대 구분 없이 한꺼번에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즉, 시대순으로 정리를 하다 보면 같은 메타 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관심의 대상이나 폭이 보다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문학, 건축, 미술, 과학, 생태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적용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술이 살짝 다르더라도 동어 반복적인 부분이 너무나 많이 나온다. 독서를 방해하고 질리게 할 정도로 말이다. 보다 압축적으로 김우창의 글 가운데 인용할 것을 엄선하여 이에 대한 주석식 해설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비슷한 부분을 절제하지 않고 꾸준히 인용하고 유사한 해설을 반복한다.) 그러면 책의 분량도 500여 페이지에서 350 페이지 정도로 축소될 것이고 그럼에도 김우창의 철학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은 김우창의 철학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시간을 내어 책을 다시 글로 정리하고픈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