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면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주어진 발달단계)에서 합리적으로 도달될 수 있는 방법과 절대적 효율성을 갖는 총체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고전적인 기계를 포함하지만 어떤 체계, 시스템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래서 저자는 과거의 기술과 현재 기술은 그 개념 차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은 어떤 기술이건 기술의 역사를 서술하지 않는다. 일부 서술이 나오긴 하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과거가 아닌 현재 기술-기계적 총체가 아닌-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의 미래를 바라본다. 이 책의 제목이 <The Technological Society>임을 생각하자. (사실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프랑스어 책의 영어판을 번역했다.)
저자가 바라본 기술은 처음에 간단한 기계처럼 하나의 도구에서 출발했을 지 모르지만 자기 확장성을 통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고 지역차를 뛰어넘어 보편화 되면서 이제는 세계 사회, 경제, 정치를 아우르고 이것들의 도구가 아니라 이것들을 지배하는 위치로 자리잡았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도 어느덧 기술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말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요약해 보니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문명 비판 이상의 내용이 아닌 것으로 비춰진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의 주 내용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예들과 논리는 이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만든다. 반면 460여 페이지에 가까운 자세한 서술은 다소 지치게 하는 면도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기술의 미래를 예측했을 때 흔히 우리가 기술 발전을 통해 예측하게 되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계가 구성되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에 대해 조금 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정말 그가 예상한 대로 세계가 흘러가리라 경고한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언급한다면 기술적으로 뒤쳐졌던 중세의 삶이 지금보다 불편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필요 이상의 기술, 그러니까 잉여를 생산할 정도의 기술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간단한 도구 외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것은 당시 분위기가 절제를 통해 정신적 만족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비록 당시에 지금처럼 많은 가전제품이 있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다. 맞는 말이지 않은가? 아마 이를 생각하면 인간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런데 기술이란 것이 효율성을 목표로 하기에 도덕적, 이상적인 생산량과 상관 없이 최대 생산을 목표로 하기에 절제하는 생산은 쉽지 않다.
또한 기술의 발전사가 되었던 이상적 사회의 이미지사가 되었던 개인의 자아 향상 등 복지에 관련된 부분을 모두 여가에서 찾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야기도 귀담을만하다. 그러니까 인간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를 뒤로 한다는 뜻인데 생각해보면 노동 자체에서 삶의 의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나 싶다. 사실 여가는 자아 발전의 시간 이전에 그냥 보내고 쉬는 시간이 아니던가?
한편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책이 사실은 1964년에 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45년 전에 씌어졌다는 것인데 당시 저자의 생각이 현재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정말 비관적인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말미의 2000년대의 전망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한 미래학자의 예언서라 할만도 하다.
번역에 대해서도 약간 할 말이 있다. 대체적으로 읽는데 무리 없는 번역이지만 논리적으로 살짝 꼬인 번역이 간간히 눈에 띈다. 그리고 역자도 100% 이해가 안된 부분이 있었지 않나 싶은 부분도 보인다. 역자 주가 필요한 부분을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는 Jacques Ellul이다. 그러니까 자끄 엘루가 아니라 자끄 엘룰이다. 프랑스어가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다지만 이 경우 발음한다.
음..1946년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아마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예견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기술발전을 통해 행복하리라는 것도 사실 그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이득을 취하게 되는 특정집단에 의해 구성된 명제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자가 기술을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아니라 …총체성, 어떤 체계라고 보는 점은 기술에 대해 사회구성론적 관점으로 본 것 같습니다. 기술을 굉장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실체로 보는 경향이 다분한데 사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아니지요.
요즈음은 과학기술학쪽에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통해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흥미롭습니다. 행위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을 생각하기 쉬운데, 기술 그 자체를 행위자로 놓고 분석하거든요.
이 책에서 기술지배사회에서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들도 궁금해집니다.
참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상기시키시네요. 말씀하신 행위자 네트워크론을 보면 정말 인간은 이제 도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체의 자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긴 권력의 문제가 주체성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을 때 자본을 향한 기술의 지배가 갈수록 단단해 지고 있는 만큼 인간의 비주체화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 기억엔 개인이 어찌해야 한다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았었나 싶네요. 워낙 읽고 나면 대부분을 휘발시키는 것이 제 기억력이라 ㅎ
그나저나 어떤 쪽 공부를 하시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ㅎ
그렇다면 저자의 대답에 대한 확인은.제가 읽어본 후 댓글 남길게요.^^
한번씩 드는 생각인데, 기술이 인간의 주체화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그 방법이 발전되면 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인간의 비주체화(객체화)를 가속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해결책을 기술발전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지 않고요.
참..그리고 제 전공은 여성학입니다. 학부는 화학인데, 대학원을 이쪽으로 전공했고요.
심리학도 잠시 전공하다가…그만두고..암튼, 제가 좀 잡식파입니다.^^
화학에 여성학 재미있네요. 무엇이든 공부는 재미있지요. 정말 공부가 제일 쉬운 것 같기도 합니다.ㅎ
문명의 발달은 문화의 발달과 함께 나아가지 못하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러다이트 운동이 답이 되는 것은 아니죠.
어찌보면 효율성이라는 것이 이러한 인간의 비주체화를 야기시켰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효율적이 되면 그만큼 인간 삶의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다시 그 효율성의 이유로 더 많은 일이 인간에게 주어지잖아요. ㅎ
물론 효율성의 추구를 통해 잉여 생산이 가능해졌고 그것이 문명, 문화의 발달로 이어진 것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그 적정선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잘 모르겠네요.ㅎ
그 적정선을 모르는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의 발전속도도 그렇고 그 발전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속도도 학자들이 이론으로 구조화시키기 힘들만큼 빠르니까요.
낯선청춘님이 말씀하신 내용처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그 결과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러한 공간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그 적정선이라는게 정의내려지지 않을까 싶어요.
전 이렇게..느리고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 작은 창의적인 공간(반드시 물리적 공간이 아닌)으로부터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보편성이 구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끈을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욕망이 걸리니 적정선이 설령 있다고 해도 지키기 어렵죠. ㅎ 저도 어떤 보편성을 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요. 하지만 욕망이 권력과 연계 되기에 그것이 실현될 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저는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ㅎ
^^아마도 미래가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운게 사실일 가능성이 클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이 이성적이고 자율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전.. 디스토피아는 과도한 다양성보다 획일적인 전체주의로 인해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공간들이 있다면 덜 디스토피아로 만들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절대 미련을 못버리는..^^)
그렇게 영웅이 탄생하는 것인가요? 그래서 자유의 세상이 찾아오고 다시 발전하다가 디스토피아가 또 오고 또 다시…ㅎ
마치 변증법처럼..ㅋ 아니, 역사의 순환성이라고 해야하나요.^^
영웅주의 또한 전체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점에서 그럴수도 있겠지요.
영웅주의..윽..싫어합니다.
그 어떤 역사적 상황속에서도 평범한 개인들이 막말이 아니라 최소한 자신의 자율성(자신의 신념, 생각, 의견을 가감없이 발언할 수 있는)을 발휘할 수 있는 곳, 그에 대해 타자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보장되는 곳이야 말로 자유의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프랑스가 생각나네요.
미약해보이지만 소소한 시민 개개인의 힘을 믿습니다.^^
역사는 순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언젠가 한 수업에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립과 통합의 연속 ㅎ
토론의 장은 상대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데 요즈음의 우리 사회는 그것이 부족하네요. 나만이 옳다고 하니…
맞아요.. 하지만 그렇게 부추기는 언론이나 미디어의 행태가 아무래도 크지 않을까 싶어요.
뭐 원인을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겠지요..
멀리 갈것도 없이, 저부터 좀..돌아봐야 겠네요.^^
예. 비판에 나를 빼놓으면 더더욱 안되겠죠. 저도 반성.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