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역, 열린책들 2000)

그리스의 위대한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책장에 몇 년간 꽂혀 있던 책을 이번에 큰 맘 먹고 읽은 것이다. 최근 내가 재즈의 고전들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소설에서도 고전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60대 중반의 노인이지만 전혀 노인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삶의 원초적인 욕망에 전 존재를 내던질 열정이 있으며 종교는 물론 세속적 구속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지녔다. 60대 중반이라는 그의 나이는 오히려 그가 그만큼 많은 경험이 쌓여 자유로워졌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에 반해 그와 함께 하는 작중 화자인 나는 실질적인 세상과는 달리 관념적 삶, 욕망을 억압하고 소위 말하는 정신적 투명성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조르바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고 나는 미래에 대해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두 성향은 강한 대조를 이루고 후에는 나가 조르바의 삶을 이해하고 동경하며 어느 부분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현재 조르바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대다수는 정신이상자는 아니더라도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그를 피할 것 같다. 하지만 조르바의 삶을 살펴보면 다양한 가슴 아픈 경험을 안고 살아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가슴 아픔에서 조르바는 모든 것은 다 같다라는 생각, 그러니까 신과 악마가 같고, 조국 사람과 적국 사람이 같다는 식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인정함으로써 조르바의 자유는 획득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르바의 자유정신은 단순히 억압에 대한 반역이나 저항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보다는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보다 큰 자유인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르바가 얻어낸 경지는 삶에 대한 무관심이나 관조와는 상관 없다. 여전히 그는 뜨거운 심장과 열정으로 일상의 모든 부분에 감탄하면서 산다. 그리고 세상의 조화에 대한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세상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말 그대로 자연(自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놀라웠던 것은 조르바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이런 인물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조르바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소설의 내용이 단지 완전 자유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완전 자유가 가능한 것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