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이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두고, 즉 과학에서의 단절의 역사를 두고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이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과학적인 차원에서의 논쟁을 다룰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부시 정권을 중심으로 한 보수 우파가 어떻게 과학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재단하여 사용했는가를 담배, 피임, 환경오염, 낙태, 비만, 줄기세포 연구 등에서의 실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통 네오콘이라 불리는 미국의 보수우익 집단의 기본 철학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산화 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가져온다는 과학계의 주장을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간접 흡연이 폐암과 관련이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냥 반대 주장을 펼쳤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이러한 불합리하게 보이는 주장을 과학의 탈을 쓰고 한다는 것이다. 즉, 비주류학자를 지원하여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얻어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는데 있지 않다. 현재 지배적이라 부리는 과학 이론들의 고결성에 흠집을 내고 결국은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부정적 인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마치 일본이 독도문제를 논쟁화 시키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네오콘의 리더들-킹리치 같은-은 국회내의 과학 자문 위원회를 해체시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데이터 품질 관리법’을 악용하여 정상과학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업체가 설립한 유관 단체를 통해 과학적 사실을 기업 친화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 품질 관리법’은 과학이 이룰 수 없는 완벽한 데이터를 요구함으로써 대부분의 사안이 논의를 거치기 전에 사장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기에 미국의 현실이지만 나는 읽는 내내 화가 났다. 네오콘의 리더들은 <Tomorrow>같은 재난 영화에서 사건이 터져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그래서 마지막에 한대 맞곤 하는 답답한 관리를 생각하게 했다. 실제 그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공화당과 부시 정권의 바보 같은 정책에 화가 나면서도 순수한 과학자 집단에도 화가 났다. 그들은 과학의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지만 이런 상화에서는 어느 정도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네오콘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과학을 ‘건전과학’이라 부르고 그에 반하는 과학을 ‘쓰레기 과학’이라 오도 하는 것에 맞서야 한다. 그것은 ‘건전과학’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을 요구하는 듯한 건전과학은 실제로는 모순 투성이의 기업 친화적 과학이다. 하지만 건전과학이란 명칭은 자연스레 국민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쓰레기 과학’은 실제의 합리성과 상관 없이 쓰레기 과학이 된다. 이것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신자유주의’가 그 어감상 진보적이고 자유친화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 아니면 현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녹색성장 사업식으로 포장하는 것과 같다.
이 책에 담긴 사례는 미국의 경우다. 그래서 읽으면서 미국 상황을 내가 왜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보수 우파의 책략을 한국 사회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실과 달리 움직이는 여러 대책들을 직접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과학집단이 현 정책의 불완전성, 모순을 이야기 한다지만 그것이 정돈된 책으로 나온 것이 없다는 것은 유감이다.(나만 모르나?) 냉철하게 4대강 사업을 평가하고 그 사이에 이루어진 많은 유착관계를 파고드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진짜 과학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