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서경식은 재일 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어로 서술되었고 이것을 한국인 번역자가 번역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저자의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예쁘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좀 거부감이 들 수 있는-아닌 것도 많지만-현실의 어려움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고통스럽지만 용기 있게 표현한 그림들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해서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헨드리크 테르브뤼헨, 고흐,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자르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아마도 고흐를 제외하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화가들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그림 취향이 예쁜 것, 잘 마무리된 것에 집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이들 대부분은 바이마르 시대와 나치 시대에 활동했던 미술가들로 나치에 의해 퇴폐작가라 낙인 찍혀 힘들게 살았거나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눈앞에 펼쳐지는 모순에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이들 그림들에 대한 인상, 느낌을 저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서술한다. 그런데 그 개인적인 차원이란 것은 솔직하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자신이 그림 앞에서 느낀 시대의 어두운 흔적들, 작가의 고뇌에서 출발하여 그것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작가들의 삶과 그 시대를 깊이 파헤쳐 왜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힌다. 아울러 작가 또한 두 명의 형이 한국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인한 무게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자신의 느낌에서 출발하여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감상법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가 재즈를 중심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세운 방향과 일치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빨려들 듯 읽었다. 저자가 그 그림 앞에서 여러 가지 복잡 다단한 느낌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삶, 시대적 환경 등과 결부시키는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공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감동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울러 그가 본 그림들을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 또한 생겼다. 여기에는 저자의 뛰어난 글쓰기 능력도 한 몫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그림을 찾아 떠난 기행을 담은 이전 책들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한국 미술이 현실과 유리되어 너무 예쁜 것, 추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한국어 판을 먼저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문, 아니 한국 미술은 너무 예쁜 것만 추구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나는 사실 한국 미술을 잘 모르기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취향의 측면에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의 나약함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분명 크나큰 비극을 겪었지만 그 흉한 과거를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다. 예술이 그 자체로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은근히 교육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기를 인정할수록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책에 감동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미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한 때 나는 ‘추한 것에서 미를 찾자’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적이 있다. 사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었지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파리 재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경험을 이 책은 자극한다.
* 한편 고흐의 그림을 주제로 일본 화가 야로 시즈아키와의 대담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고흐의 그림에 대한 해설들과 유사한 내용이면서도 두 화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드러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