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선생의 강의록 <개념-뿌리들 1>을 읽었다. 사실 나는 이정우 선생을 매우 좋아한다. 대학 시절 그의 강의를 내 전공과 상관없이 찾아 들었는데 모든 강의들이 참 재미있었으며 정말 학자구나, 단순히 대학교수로 볼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곤 했다.
이런 선생은 현재 대학을 떠나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책은 철학의 주요 개념을 가지고 강의한 것을 정리하고 있다. 총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권이 아마 한 학기 분량인 듯싶다. 먼저 읽은 첫 번째 권은 원리, 자연, 존재, 실재, 인식, 범주, 유한 등 우리가 일상 생황에서 널리 쓰면서 정작 그 의미의 심층은 잘 파악하지 못한 단어들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선생은 이 단어들을 설명하며 그리스 철학을 중심으로 해서 서양 철학의 흐름을 짚고 나아가 동양 철학의 입장에서도 깊이 있는 설명을 시도한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가 시간 속에서 어떤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또 변화했는가를 조망하게 한다. 그러니까 철학의 기초 용어를 통해서 본 철학의 역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 철학 중심으로 우선 설명하고 있지만.(이 부분은 그래서 철학은 결국 그리스 철학의 새로운 주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철학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이 책을 교과서처럼 사용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본 개념 정의, 예를 들면 실재와 존재를 구별하지 못한 채 철학 공부를 하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서양 철학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던가? 이 경우는 원서를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아예 철학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개념 정리가 잘 안된 사람들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대학 시절을 생각했다. 그 때 선생의 강의에서 들었던 상당부분이 새로이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선생의 모습이 떠올라 거의 유일하게 남겨 둔 내 철학과목 대학노트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게다가 강의를 기록한 것이기에 강의체 그대로 사용하고 또 중간에 나오는 농담까지 그대로 옮겼기에 강의의 느낌은 더 강하다. (사실 선생의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플라톤 등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술 방식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끔씩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습니다..존칭체는 선생의 강의형 서술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아무튼 빠른 시일 안에 두 번째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