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재즈의 역사를 빛낸 여러 명반들이 있어왔고 많은 감상자들이 이들 앨범을 중심으로 재즈를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신선한 정서적 만족은 이들 명반보다 재즈의 역사에서 비켜있는 의외의 연주자의 낯선 앨범에서 받을 때 그 정도가 더 큰 것 같다. 그러한 앨범에 이번 장 세바스티앙 시모노비에의 앨범을 포함시켜야 할 듯싶다. 사실 이 낯선 프랑스의 피아노 연주자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그 음악은 너무나 친숙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가 이 앨범에서 연주하는 곡들의 대부분 익히 잘 알려진 곡들이기 때문이겠지만 아울러 음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 매우 망설이는 듯 조심조심 이어나가는 그의 즉흥적인 멜로디가 지닌 강한 흡인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앨범에는 사랑과 향수의 정서로 가득하다. 그래서 앨범의 모든 곡들은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처럼 매우 조심스럽고 처연한 느낌이 강하다. 아울러 존 콜트레인(Naima, My Favorite Things)이나 듀크 엘링턴(Luimiers) 영화 음악 작곡가 베르나르 헤어만(The Bedroom, The Road)등 시모노비에가 음악적,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선배에 대한 애정과 경의의 마음 또한 강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러한 정서들을 표현하는 시모노비에는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보통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라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요, 내 연주를 들어보시오’라는 식으로 자신의 모든 면을 한꺼번에 드러내려는 의욕의 과잉을 보이기 쉬운데 어째 시모노비에는 오히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끝없이 안으로 가라앉으려 한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연주자는 보이지 않고 스스로 울리는 듯한 맑고 투명한 음악만 들릴 뿐이다. 실제 “In A Sentimental Mood” 의 첫 소절로 시작되는 첫 곡 “Lumieres”부터 평화로운 마지막 곡 “Paix”까지 감상하는 동안 감상자는 그 강한 정서적이고 시각적인 울림에 집중한 나머지 연주자를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이 앨범은 현재 프랑스 최고의 재즈 전문 스튜디오로 각광 받고 있는 라 뷔손 스튜디오에서 직접 제작한 앨범이다. 그래서 음악적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녹음 또한 매우 아름답게 다가오는데 특히 피아노 음색의 부드럽고 투명한 맛은 그 동안 스튜디오 라 뷔손에서 녹음된 여러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들 중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이다. 라 뷔손의 피아노 녹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한없이 깊고 동그란 소리가 꿈결처럼 부드럽게 흘러 나온다. 감상하면 감상할수록 그 아름다움에 끌리게 되는 앨범으로 2003년의 인상적인 앨범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