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연주자들은 다른 어느 장르의 연주자들보다도 순간적 도전을 즐긴다. 특히 이런저런 연주자들이 갑작스레 한 자리에 모여 즉흥 세션을 펼치는 것은 재즈만의 큰 매력가운데 하나다. 재즈 앨범들의 수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앨범 제작사들은 재즈 연주자들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는 듯 무수히 많은 세션을 앨범으로 기록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는 없는 법. 그 가운데 아주 진귀한 세션의 기록이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바로 존 맥러플린, 자코 파스토리우스, 토니 윌리엄스가 1979년 쿠바에서 열린 하바나 잼 공연에서 가진 25분간의 세션을 앨범으로 만든 것이다. 이 하바나 잼은 1979년 3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에 걸쳐 콜럼비아 레이블이 기획하여 레이블 소속 모든 연주자들을 쿠바의 하바나에 위치한 칼 막스 극장에서 공연하게 한 것으로 세 연주자는 “Trio Of Doom”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두 번째 날인 3월 3일에 25분간 다섯 곡을 공연했다.
사실 세 연주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지만 이전에 세 연주자는 각자 다른 두 연주자와 세션을 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토니 윌리엄스와 존 맥러플린은 전설적 그룹 “Lifetime”으로 함게 활동했었으며, 토니 윌리엄스와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웨더 리포트의 앨범 녹음으로 잠시 만났던 적이 있다. 그리고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존 맥러플린의 경우 스튜디오 세션을 함께 한 이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당시 세 연주자는 각자의 악기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또 마일스 데이비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퓨전 재즈 혹은 재즈 록의 인기가 아직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세 연주자의 만남은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하바나 잼 공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감상자라면 분명 1979년 여름 두 장의 앨범으로 발매된 <Havana Jam>앨범에 이 트리오의 연주가 수록되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 앨범에는 분명 세 연주자의 연주 3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의외로 이 앨범에 수록된 버전들은 라이브 음원이 아니다. 공연 5일 후 CBS 스튜디오에서 새로 녹음한 음원이다. 이렇게 라이브 앨범에 스튜디오 음원이 수록되었던 것은 각자 개성이 강했던 토니 윌리엄스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불화 때문이었다. 당시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웨더 리포트 활동으로 아주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에 이 트리오 공연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토니 윌리엄스의 장쾌한 드럼 솔로 후 시작된 “Dark Prince”부터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약속과 다른 돌발 연주로 존 맥러플린과 토니 윌리엄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연을 망쳤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스튜디오에서 앨범에 수록될 3곡을 다시 녹음하게 되었다 한다. 녹음 현장에서도 녹음 후 토니 윌리엄스가 자코 파스토리우스를 벽으로 밀칠 정도로 큰 신경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실제 공연의 현장을 공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사실 지금 들어보면 아주 뛰어난 연주들인데 왜 그렇게 서로 감정 싸움을 했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앨범은 이 25분의 기록 외에 5일 후 CBS 스튜디오에 모여서 다시 녹음한 문제의 세션 또한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앨범은 감상 이전에 기록으로서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지 딱 20년이 흘렀고 또 토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지 딱 10년이 지난 지금 이 오래된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