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늘 새로운 지점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그럴 때마다 불세출의 뛰어난 스타일리스트가 이를 이끌곤 한다. 재즈의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들은 주로 이러한 혁신가들이다. 하지만 재즈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해 보이는 다수의 연주자들이 재즈의 두께를 두텁게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색소폰 연주자 빌리 미첼은 재즈사에서 그렇게 주목 받았던 인물은 아니다. 아마도 이번 박스 세트에 담긴 앨범 주인들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낮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캔자스 출신으로 1940년대부터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 활동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디지 길레스피, 우디 허먼, 카운트 베이시 등의 빅 밴드 멤버나 밀트 잭슨, 태드 존스, 토니 베넷 등의 사이드맨으로 활동했을 뿐이다. 그러다가196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그는 자신의 리더작을 녹음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앨범들은 아쉽게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62년에 녹음된 이 앨범도 마찬가지.
아직 떠오르기 직전의 신예였던 바비 허처슨(비브라촌)을 비롯하여 데이브 번스(트럼펫), 빌리 왈라스(피아노) 등 그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이 앨범에서 색소폰 연주자는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하드 밥을 따른 사운드를 들려준다. ‘Automation’, ‘Siam’같은 곡이 대표적. 한편 ‘J&b’, ‘Sophisticated Lady’, ‘just Waiting’등 에서는 피아노와 트럼펫을 빼고 슬리피 앤더슨이라는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르간 연주자를 기용한 쿼텟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 부분에서는 소울 재즈의 향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당대에는 평범한 앨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들으면 연주에 담긴 하드 밥 시대의 정신에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앨범, 그래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