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늘 자기 자신을 쇄신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온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너무나도 다양한 스타일들이 재즈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름대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 재즈가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실제 “재즈”라는 용어가 아우르는 음악의 범위만 보더라도 이것은 쉽게 이해된다. 과거에 재즈는 스윙감 있는 리듬을 바탕으로 즉흥 연주가 드러나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지칭했다. 그러나 이젠 그저 창조적인 무엇, Something Else!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을 추상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 역시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담긴 연주와 음악들을 우선적으로 선호하고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때로는 과연 내가 재즈를 듣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많다. 새로운 시도는 분명 재즈를 살아 있는 음악으로서 앞으로 전진하게 하지만 그 급박한 속도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한편 “재즈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는 따라서 “재즈는 아직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경우의 수에 머물렀던 모든 가능성들이 해방되어 현상만 도처에 산재된 듯한 지금의 재즈에서 과연 재즈의 본질, 중심을 다시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의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를 듣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피아노의 에단 아이버슨, 베이스의 라이드 앤더슨, 드럼의 데이빗 킹으로 구성된 Bad Plus의 앨범 <These Are The Vista>는 이러한 어지러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음악을 담고 있는 좋은 앨범이다. 이 앨범의 세 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재즈를 연주하지만 성장에는 단순히 재즈만 자리잡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하드 밥이나 쿨 재즈 연주자들이 재즈가 대중 음악 그 자체였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다면 이들은 롹과 팝이 대중 음악이었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이러한 차이가 자연스럽게 이들의 음악에 편재한다. 이것은 단지 앨범 수록 곡 몇 곡이 너바나, 아펙스 트윈스, 블론디 등의 롹, 테크노, 디스코 장르의 곡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앨범 전체에 걸쳐 이 기타 장르의 음악적 기법, 특징들이 자유로운 세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결합하여 새롭고 진보적인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새로운 연주의 기재들을 사용하여 매 곡마다 강한 콘트라스트를 부여한다. 그래서 앨범의 모든 곡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대립,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멜로디와 강박적인 리듬의 대립 등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의 변화무쌍하고 혼란스러운 연주가 기본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낯설지 않게 들리는 것은 이들의 연주가 재즈 트리오의 전통적인 면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연주자 모두 개성이 강한 연주자이지만 결코 이들은 혼자서 튀는 법이 없이 탄탄한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인터플레이를 펼친다. 즉, 형식상으로는 결코 낯선 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앨범에 사용된 다른 장르의 음악적 요소들은 대부분 사운드의 질감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렉트로닉 효과가 필요할 텐데 이 세 연주자들은 고집스럽게도 어쿠스틱 연주로만 이 효과들을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도 매우 뛰어나다.
이처럼 이 앨범은 단순히 재즈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전통과의 강한 연결을 담고 있다. 즉, 과거의 재즈와 단절을 시도하면서도 전통적인 요인들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전체 재즈사의 관계의 망에서 이 앨범이 큰 의미로 오래 기억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