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릴 안데르센, 바실리스 자브로풀로스, 존 마샬 이 세 연주자는 이미 바실리스 자브로풀로스의 리드로 <Achirana>(ECM 2000)을 녹음했던 적이 있다. 이 앨범은 대중과 평단의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바실리스 자브로플로스라는 새로운 피아노 연주자의 존재를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새롭게 녹음한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완전한 정규 트리오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앨범 타이틀처럼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동등한 힘과 공간 분할,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긴밀한 상호 연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릴 안데르센이 리더가 된 것도 이것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 악기 속에서 베이스가 가장 중용의 위치에 있지 않은가? 이를 위해서 앨범 타이틀 곡이라 할 수 있는 “European Triangle”을 들어보기 바란다. 완전 즉흥 연주인 이 곡은 세 연주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의 연주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연주하는데 기보된 곡 이상의 조화를 들려준다.
한편 라벨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를 동기로 사용한 “Pavane”를 대표로 이번 앨범은 악상부터 그것의 즉흥적인 발전까지 모두 인상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아마도 바실리스 자브로풀로스의 피아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클래식에 단단한 기반을 두고 있고 또 아직도 그 연관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그의 피아니즘은 전통적인 재즈 피아노와는 자못 다른 면들을 보인다. 왼손 코드의 제약에 멜로디적으로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아웃을 꺼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독특한 연주다. 이것은 다소 그가 즉흥 연주에 있어서 주저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바로 여기서 회화적 정서가 발생하기에 무조건 이것을 미완성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그리스 피아노 연주자의 특징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연주의 측면에서나 정서의 측면에서나 매우 만족스러운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