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보컬을 제외하고는 남성들이 절대 대수를 차지하고 있다. 피아노 역시 다른 악기에 비해 여성 연주자들이 좀 더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수적으로는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재즈에서만큼은 좀 상황이 다르다. 여성 피아노 연주자들이 한국 재즈의 색을 결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한 명의 여성 연주자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은 이선지.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할 만큼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은 상당히 늦게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음악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고 또 뉴욕을 중심으로 조지 가존, 조 로바노 같은 거물 연주자들과 협연하면서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첫 앨범 <The Swimmer>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첫 앨범에서 그녀는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면모, 작,편곡자로서의 면모, 그리고 밴드의 리더로서의 면모까지 제작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발산한다. 그리고 그 드러냄은 기대 이상으로 상당한 짜임새가 있다. 특히 제일 먼저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작, 편곡 솜씨다. 그녀는 앨범 수록곡 9곡 가운데 스탠더드 곡 ‘So In Love’를 제외한 8곡을 직접 썼다. 그런데 이들 곡들은 수평과 수직의 구조적 측면이 동시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정 멜로디나 리듬 혹은 코드의 진행에 매몰되지 않고 종합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그녀의 곡들은 또렷한 하나의 정서나 그 밖의 특정 포인트를 제시하기 보다는 보다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음악이 감성적으로 건조하다거나 차갑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Unrequited Love’나 ‘Night Angler’같은 곡은 감성적 측면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앨범의 사운드를 건축적 구조에 기반한 아주 특별한 감성적 사운드라 정의하고 싶다. 현실을 그린 그림이나 영화, 소설을 보듯이 현실을 한발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고나 할까? 그녀의 음악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을 주는 음악, 그래서 저절로 상상과 사유를 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재즈의 본질이자 가장 큰 매력이 아니겠는가?
한편 이 앨범을 위해 그녀는 미국 포스트 밥계에서 인정 받고 있는 두 연주자 벤 스트릿(베이스), 마크 퍼버(드럼)와 그녀의 스승이기도 한 랄프 알레시(트럼펫)를 불렀다. 그 가운데 랄프 알레시의 트럼펫은 전체 사운드의 색감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톤과 솔로 연주에 있어 상당히 인상적이다.
물에 떠 있기 위해서 매우 힘든 운동이 필요하다. 그 힘듦을 극복해야 물에 떠 있는 것이 주는 해방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그동안 첫 앨범을 위해 이선지에게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물에 뜨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보다 오래 더 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더 많은 움직임을 해야 할 때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오래 물위를 자유로이 헤엄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