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재즈가 차가움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북유럽의 색소폰을 이야기할 때 Jan Garbarrek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북유럽 색소폰 연주자들은 얀 가바렉의 연주나 사운드에 다소간의 영향을 받았고 때로는 아류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Trygve Seim도 그러한 영향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릭베 자임은 이러한 영향을 하나의 요소로 살짝 치환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첫 앨범(Diffrent Rivers ECM 2000)부터 제시하여 유럽의 평단으로부터 상당한 갈채를 받았다. 필자 역시 얀 가바렉적인 분위기를 예상하고 접근했다가 의외로 새로운 사운드가 담겨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트릭베 자임에 주목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단지 얀 가바렉 이후 새로운 북유럽 색소폰 주자의 탄생이라는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상관없이 그의 음악 그 자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이제 30을 넘긴 젊은 연주자인 그는 비록 음반의 이력은 짧지만 무대에서의 경력은 무척이나 화려하다. 그래서 그의 2000년도 앨범이 비록 첫 앨범이었음에도 상당히 성숙되고 균제된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그의 절친한 동료들과 그리고 Cikadas 앙상블과 함께 녹음한 두 번째 앨범도 마찬가지다. 첫 앨범이 다양한 혼악기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시카다 앙상블의 현악기들을 참여시키고 있다는 것이 다르지만 음악의 발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첫 앨범의 연속선상에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첫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 두 번째 앨범 또한 이미 구상이 완료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첫 앨범에 대한 일종의 후속작으로 생각하기엔 곤란하다. 이미 시간상의 선후 관계에서 벗어나 있듯이 이번 앨범은 첫 앨범과 병렬관계에서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앨범을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 첫 앨범 앞에 위치시키고 싶다. 그것은 다양한 흐름(Diffrent Rivers)에 대한 근원(Source)이라는 앨범 제목에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첫 앨범 보다 이번 앨범이 보다 더 다양한 트릭베 자임의 음악적 배경과 관심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릭베 자임의 음악이 지닌 장점은 무엇보다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목소리와 음악 양식의 경험들에 대한 표현 욕구를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의 음악은 현대 음악적인 분위기부터, 북유럽 민속음악, 프리 재즈등의 많은 양식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 속에는 극단적인 자유로움과 고도로 통제된 균형미가 공존한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다양함을 하나로 묶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자유와 통제라는 이 상반된 요인들은 그의 앨범을 구동하는 두 개의 독립된 축이 되어 병치 상태로 공존한다. 그럼에도 극렬한 대비보다는 앨범 전체에 균질성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두 항들은 인접지역에서 날카롭게 분리되지 않고 의외로 적절하게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임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치카다 앙상블로 나뉘어진 연주상의 두 항들이 하나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역할을 교차시키면서 즉흥과 통제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최근의 즉흥 연주자들이 즉흥 연주만큼이나 현대 음악적인 작곡기법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한 좋은 근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교차는 너무나 교묘하고 훌륭해서 앨범 전체가 마치 하나의 곡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다.
한편 트릭베 자임이 자신의 색소폰을 무조건 적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그가 연주에 국한되지 않고 작곡과 전체 연주 방향의 리드를 통해 자신을 표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데 따라서 각 연주자들의 개별적인 사운드가 자임의 다양한 목소리의 하나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이것이 얀 가바렉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트릭베 자임의 이번 앨범은 첫 앨범 이상의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그가 어떠한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킬지 관심을 갖게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ECM의 스타일리스트를 만나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