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출신의 여성 보컬 자신타-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야신타로 불렸는데 올바른 표현은 자신타라고 한다- 국내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뜻밖에도 음악이 아닌 음질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2000년도 앨범인 <Autumn Leaves>가 국내의 오디오파일들에게 음질 좋은 앨범으로 입 소문을 타게 되면서 국내에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갔던 것이다. 실제 <Autumn Leaves>는 오디오파일이라면 누구나 한 장씩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디오 레퍼런스 음반으로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다. 이렇게 오디오파일들이 자신타를 좋아하게 된 것은 물론 그녀의 노래를 투명하게 잡아낸 녹음 음질 때문이겠지만 촉촉하게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미성이 크게 작용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자신타의 노래를 조용히 듣고 있자면 마치 옆에서 한 사람만을 위해 노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작 국내의 재즈 애호가들에게 자신타의 존재는 오디오파일들의 지지에 비한다면 아직도 미약한 수준이다. 특히 젊은 재즈 애호가들에게 자신타는 생소한 존재에 가깝다. 그것은 오디오파일들이 좋아하는 그 부드러움과 촉촉함, 그리고 섬세한 사운드는 너무나도 성인취향의 것이어서 재즈의 생동감과 전통적인 끈끈한 맛을 선호하는 젊은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비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신작 <The Girl From Bossa Nova>는 드디어 자신타가 재즈 애호가들에게도 높은 지지를 받을 때가 왔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다른 어느 자신타의 앨범보다 젊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그녀가 지닌 매력은 한층 숙성되어 그윽함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의 제목이 의미하듯 이번 앨범에서 자신타가 노래하는 곡들은 모두 너무나도 잘 알려진 보사 노바 곡들이다. “How Insensitive”같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이 앨범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밖에 “So Nice”같은 다른 작곡가의 곡이 양념처럼 수록되어 있다.
이 곡들을 자신타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촉촉함을 유지하며 그녀만의 보사 노바에 대한 정서를 불어넣고 있다. 여기서 그녀만의 정서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은 누구에게 큰 영향을 받을 정도로 타인의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대신 문학이나 여행관련 책, 일상적 잡지를 보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앨범에서 그녀의 노래들은 전통적인 보사 노바의 외연을 띄면서도 화려함보다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편 보사 노바는 결코 보컬에 모든 것이 집중되지 않았을 때 그 참 맛이 드러난다. 사실 보사 노바의 은근한 분위기는 리듬의 긴장과 이완의 멜로디컬한 반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타 역시 사운드에 전면에 위치하면서도 그녀를 감싸는 사운드와 여유롭게 동화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앨범의 모든 곡을 편곡한 피아노 연주자 빌 컨리프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이미 사이먼과 가펑클의 곡들을 맛깔스럽게 편곡한 연주로 깊은 인상을 주었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탁월한 편곡 실력은 그대로 드러난다. 때로는 리듬을 안으로 감추고 편성을 간편화 한다던가 리듬에 보다 더 멜로디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하는 그의 편곡 스타일은 수공으로 재단된 옷처럼 자신타의 보컬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 밖에 한때 스탄 겟츠의 적자라는 평가를 들었던 해리 알렌의 색소폰, 리듬과 멜로디 모두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존 피사노의 기타 등 빌 컨리프의 리드 하에 움직이는 각 멤버들의 호흡 인상적이다.
한편 이 앨범 역시 뛰어난 음질의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을 언급해야겠다. 과장하지 않는 포근함이 돋보이는 사운드는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재생되고 또 선명하게 분리되는 사운드를 좋아하는 오디오파일들에게 큰 만족을 주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이전 자신타의 앨범들이 보컬에 비해 반주 악기들의 녹음은 뒤로 물러선 느낌이 강했던 것과 달리 반주 악기들 역시 자신타와 이상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보다 더 입체적인 감상의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