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우연성에 의지할 것만 같았던 에반 파커의 일렉트로-어쿠스틱 앙상블이 어느새 네 번째 앨범을 녹음했다. 첫 앨범에 비교한다면 그 규모가 배 이상이 되어 11명의 거대한 멤버를 갖춘 앙상블로 성장했다. 에반 파커의 색소폰을 중심으로,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타악기 등의 어쿠스틱 악기와 다양한 전자음을 발산하는 일렉트로닉스들로 구성된 이 음악은 여전히 멜로디는 찾아보기 힘들다. 간간히 에반 파커의 솔로가 멜로디라 생각되는 것을 소리내지만 기본적으로 이 앙상블의 음악은 개별 소리들이 서로 중첩되어 하나가 되거나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소리 덩어리의 흐름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음악은 특별한 조성이나 극적인 고저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음악이 상당히 아름답다라고 하면 궤변일까? 물론 일반인이 듣기에 썩 유쾌한 소리는 아니지만 때로는 불모의 회색 지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소리들의 조합에는 확실히 형언하기 어려운 시정이 담겨 있다. 그것은 11명의 연주자가 자유로이 연주를 하고 있음에도 결코 난잡하게 소리들이 얽히는 경우 없이 장 정돈되어 흐르는 것에 기인한다. 한편 혹자는 이렇게 우연적으로 발산되는 소리들 중심의 음악에서 어떤 발전,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할 지 모르겠다. 나 역시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연성 중심의 음악에는 연속성이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밴드의 규모가 커지는 등의 음악 이전의 물리적 변화는 연속성은 아니지만 다른 차원에서 음악을 바라보게 만든다.
The Eleventh Hour – Evan Parker Electro-Acoustic Ensemble (ECM 2005)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