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프랑스 재즈 하면 전통적인 재즈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색다르고 신선한 사운드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맞는 말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재즈 연주자들은 전통적 재즈의 영역에서 벗어나 보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곤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보다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는 연주자들과 이를 향유하는 감상자 층이 많다. 이들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프랑스 재즈의 지층을 두터이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알랭 마이에라스도 재즈의 지층을 두텁게 하는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많은 유럽 연주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클래식적 바탕에 빌 에반스의 세례를 받았음에도-특히 그는 빌 에반스의 직접적 후계자로 평가받고 있는 리치 바이흐를 통해 재즈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와는 다른 피아니즘을 추구한다. 그것은 촘촘한 멜로디와 간결한 스윙으로 이루어진 피아니즘, 말 그래도 1950년을 기준으로 확립된 전통적 피아니즘을 말한다.
앨범 <Tenderly>는 알랭 마이에라스의 기본적 음악 성향을 그대로 제시한다. 이 앨범에서 그는 부드럽고 편안한 멜로디들을 끊임 없이 만들어 내는 동시에 가벼이 스윙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듣다보면 저절로 오스카 피터슨, 행크 존스, 듀크 조던, 케니 베이런 등의 연주자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Hank’s Mood’는 행크 존스에 대한 직접적인 헌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렇게 전통적인 스타일로만 연주했다면 이 앨범은 그다지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랭 마이에라스는 전통적인 이디엄에 의거하여 연주를 펼치면서도 자신만의 서명을 곳곳에 새겨넣었다.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3년도 영화 <경멸>의 주제곡인 ‘Le Theme De Camille, 카미유의 테마’이 좋은 예다. 이 곡에서 알랭 마이에라스는 자신이 클래식적 소양이 깊은 유럽 연주자임을 단아한 서정적 연주로 드러낸다. 이것은 이 앨범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 쟝 피에르 잭슨이 직접 감독한 영화 <그래도 사람의 감정은 어쩔 수 없다>의 주제곡 ‘Si Douce’로 이어진다. 한편 바하의 인벤션과 이를 기반으로 바하의 재즈적 변용을 시도한 ‘Invention #4/aBachadabra’은 알랭 마이에라스의 유럽적 감성과 전통적 트리오 연주가 아주 효과적으로 결합된 곡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알랭 마이에라스에게 전통적인 트리오 양식은 지켜야할 규범이라기 보다 그 자체로 정서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나 생각된다. 즉, 재즈의 아름다운 시절을 향수하고 이것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보편적인 연주 방식 안에 자신의 유럽적 감성을 편안하게 넣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앨범이 상당히 평범한 사운드를 담고 있는 듯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