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오랜만에 ECM에서 <Easy Living> 앨범을 발표하면서 엔리코 라바는 최근 그가 추구하고 있는 시정(詩情)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너무 감상으로 바지지 않고 침묵의 긴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엔리코 라바의 연주는 분명 그만의 공간적이고 사색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 <Tati>앨범-아마도 코미디 영화 감독이자 배우였던 자끄 타티를 의미하지 않나 싶은데 그렇다면 앨범은 그 사운드로 볼 때 상당한 역설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에서 엔리코 라바는 보다 깊어진 침묵과 여백으로 단순하면서도 다의적(多義的)인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음을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도 않거니와 과도하게 틀 밖으로 나가는 긴장음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저 노래하듯 쓸쓸한 멜로디들을 이어 나간다. 특히 이번 앨범은 베이스가 빠진 트리오 편성, 그러니까 스테파노 볼라니의 피아노, 폴 모시앙의 드럼으로 이루어진 다소 독특한 편성으로 연주하고 있는데 엔리코 라바는 동료들에게 다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스테파노 볼라니는 자신의 리더 앨범만큼이나 자신의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데 곡이 지닌 긴장과 부드러움은 거의 그의 두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상적인 피아니즘을 선보인다.
한편 폴 모시앙은 최근 녹음을 들을 때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의 그 다양한 뉘앙스의 심벌 연주를 들려주는데 그가 만들어 내는 정적인 파탄과 내적인 미묘한 리듬은 사운드의 공간적, 정서적 여백을 극대화 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엔리코 라바는 자신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지닌 의도 중 상당 부분을 동료들로 인해 현실화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의 트럼펫 연주가 다른 복잡한 고려 없이 개인적인 노래처럼 들리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노장의 경제적인 자기 표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