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색소폰 연주자 데이비드 엘 말렉의 지난 첫 번째 앨범 <Organza>는 새로운 실력파 색소폰 연주자의 등장을 조용하게, 그러나 인상적으로 알리는 의미 깊은 앨범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크리스탈 레이블의 여러 앨범 중 최고였다 해도 좋을법한 이 앨범에서 그는 존 콜트레인(과 웨인 쇼터)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자신만의 어법을 찾기 위해 여러 스타일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렸었다.
그 뒤 3년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에 내재된 다양한 가능성들 가운데 자신에게 걸맞은 방향을 찾아내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첫 앨범에 비해 새로움은 줄어들었지만 안정성과 응집력은 보다 더 강화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여기에 색소폰의 톤 컬러나 프레이징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 등에서 그가 전설적 연주자들에게서 자유로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기교의 색소폰 연주로 숨가쁜 상승과 하강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조급함의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은 현재의 미국 재즈 연주자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대가적 기질이다. 한편 즉흥 연주에서 순간순간 희미하게 근동지역의 정서가 느껴지는데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 유파 중 상당 수가 근동 문화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획득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희미하게나마 그의 음악에 내재된 근동적 분위기는 그만의 음악적 특징이자 그가 제기하는 새로운 화두다. 아무튼 뛰어난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것은 매우 즐겁다. 게다가 그 연주자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이라면 그 즐거움은 배가된다. 이번 데이비드 엘 말렉의 앨범이 바로 그런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