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마릴린 크리스펠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면 그녀가 프리 재즈 피아노 연주자 세실 테일러의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 그녀의 피아노 연주들은 강약의 운용이나 속도의 조절에 있어서 세실 테일러의 흔적을 종종 드러내곤 했었다. 그러나 ECM에서의 앨범들은 그와는 달리 시적인 침묵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본 여성 재즈 연주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침묵을 동반한 음들이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실감한 이후부터 적은 수의 음을 사용한 연주를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침묵의 반영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네트 피콕의 곡들을 연주했었던 <Nothing Ever Was Anyway>(ECM 1997)였고 또 <Amaryllis>(ECM 2001)였다. 특히 <Amaryllis>는 침묵을 적극 활용하여 순수 즉흥 연주를 펼치면서도 아름다운 시성을 드러냈던 앨범으로 ECM의 명반 가운데 하나이자 2000년대 재즈의 명반으로 꼽을만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드럼의 폴 모시앙과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진보적인 성향의 베이스 연주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크 헬리아스와 함께 녹음한 <Storyteller>에 대한 필자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번 앨범에서도 마릴린 크리스펠은 다시 한번 자유 즉흥 연주 같지 않은 자유 즉흥 연주로 큰 감동을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 앨범은 <Amaryllis>의 연장이라 할만하다. 매우 투명하고 정제된 크리스펠만의 깊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면 동일 요소의 반복보다는 새로운 면들이 눈에 띈다. 지난 <Amaryllis>의 경우 순수 즉흥 연주였기에 연주의 유기성을 위해서 보다 많은 자신과 다른 연주자에 대한 숙고가 필요했다. 그래서 크리스펠을 비롯한 모든 연주자들은 순간의 느낌을 자동기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느린 연주를 통해 충분히 이성화하는데 주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순수 즉흥 연주이면서도 작곡된 곡을 연주한 것처럼 안정된 내적 구조를 지닌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은 순수 즉흥이 아니라 미리 기보된 곡을 기반으로 즉흥 연주를 펼친다. 마릴린 크리스펠 본인의 3곡과 마크 헬리아스의 2곡, 그리고 폴 모시앙의 6곡을 연주한다. 즉, 연주가 미리 나아가야 할 방향이 미리 설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따라서 연주자간의 소통의 문제, 유기성의 문제에 대한 걱정은 보다 더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앨범에 담긴 연주들은 지난 앨범에 비해 속도가 빨라졌으며 어찌보면 ECM이전의 열정을 새롭게 침묵의 연주와 결합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전보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프레이징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Amaryllis>에서는 빌 에반스나 키스 자렛의 선율적 피아니즘의 반영이 느껴졌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여기에 텔로니어스 몽크의 불연속적 피아니즘이 추가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속도의 증가와 자유로운 연주는 독자적인 내적 리듬을 기반으로 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었던 이전과 달리 보다 동적이고 그에 따른 변화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앨범 타이틀이 <Storyteller>라는 것은 바로 이에 기인하지 않나 생각된다.
한편 이 앨범에 담긴 폴 모시앙의 연주는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전히 다양한 색을 지닌 심벌과 그 잔향을 통한 소리의 공간화를 추구하는 그의 드럼 연주는 크리스펠의 자유로운 연주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강약 조절로 전체 사운드에 극적인 맛을 부여하는 등 한동안 잊고 있었던 대가적 풍모를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다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모습의 연주를 들려주었던 때는 없는 것 같다.
마크 헬리아스의 베이스는 이전 게리 피콕 때보다 역할이 다소 축소된 느낌을 주지만 폴 모시앙의 거시적인 연주와 달리 매 순간 마릴린 크리스펠의 피아노에 반응하며 적절한 대립점이나 합의점을 찾아 내며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의 베이스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조금만 더 그에게 연주 공간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앨범 역시 크리스펠의 이전 ECM앨범들처럼 다른 2차적 이미지의 환기 없이 그저 연주자체의 순수함만으로 감상자에게 미적 쾌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적인 아우라는 이번에도 여러 감상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