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없으면 어떤 것도 성장할 수 없다. 만약 어떤 것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죽는다. 음악은 성장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
이번 새 앨범에 빌 에반스 본인이 자신 있게 써놓은 선언성 발언이다. 이 발언을 정말 빌 에반스는 새로이 변모된 음악으로 지켰다. 사실 나는 그동안 탁월한 색소폰 연주자로서 강력하게 직진하는 그의 연주력에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면서도 다소 단조로운 그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그 동안 빌 에반스가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했음에도 변하지 않고 굳어진 선입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번 앨범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이렇게 명확한 방향 감각과 신뢰도 높은 진행을 보여준 앨범이 과연 빌 에반스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 앨범은 호평을 받을만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사운드의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그동안 그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던 재즈, 펑크, 소울 외에 컨트리 음악의 진보된 형태였던 블루그래스가 새로운 요소로 등장한다. 앨범 타이틀 <Soulgrass>도 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어찌 보면 상이한 질감의 음악이 결합되었다 할 수 있는데 실제 사운드는 이질감보다는 절묘한 조화를 통한 신선함이 우선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펑키한 리듬을 배경으로 반조, 만돌린, 도브로, 바이올린 등 컨트리 음악의 주요 악기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사운드는 시종 일관 녹초(綠草)로 가득한 시골 벌판을 신나게 가로지르는 듯한 환상을 감상자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새로움은 반조를 연주한 벨라 플렉의 힘이 컸다. 이 외에 빌 에반스는 쟁쟁한 연주자들을 대거 초빙했다. 빅터 우튼, 비니 콜라우타, 마크 이건, 존 스코필드, 스튜어트 던컨, 브루스 혼스비 등 여러 연주자들을 불러 함께 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운드의 새로운 정서적 진행 외에 각 연주자들의 쟁쟁한 솔로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앨범의 타이틀 곡 “Soulgrass”에서 들리는 비니 콜라우타의 드럼 솔로, “Home On The Hill”에서의 빅터 우튼의 쟁쟁한 베이스 초핑 등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감상의 즐거움이다.
시작은 그저 블루그래스 사운드를 기존 사운드에 덧입히는 정도로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빌 에반스에 대한 이미지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