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of Things – Tomasz Stanko (ECM 2002)

Tomasz Stanko는 현재 ECM을 대표하는 연주자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트럼펫 연주자다. 그에 비해 지나간 연주자들의 음악에 집착하는 국내 재즈계 전반의 풍토 때문인지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그의 조국 핀란드에서 그의 인기는 슈퍼스타에 가깝다. 그것은 그의 이력이 폴란드 재즈의 역사를 대변할 정도로 폴란드 재즈를 오랜 시간동안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음악은 독자적이기 이전에 요절한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폴란드 프리 재즈의 기수였던 Krzysztof Komeda와의 협력하에 이루어 진 것이었다. 1969년 코메다가 사망 후부터 그의 독자적 행보가 시작되는데 그 속에는 코메다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스탄코 자신도 이런 영향을 부인하기 위해 낯선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육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그런 대표적 앨범이 바로 코메다에 대한 헌정이었던 Litania (1997 ECM)였다.

그의 음악은 분명 녹녹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지닌 독특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징후들 때문인데 이것은 차가움으로 대변되는 ECM사운드에 부합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사운드와는 다른 스탄코만의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발틱 사운드라고 할까? 필자의 경우엔 스탄코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경험하지 못한 폴란드를 그리게 된다. 비록 각 앨범마다 연주자나 편성의 변화를 보였음에도 이러한 스탄코식 분위기는 편재하고 있다. 아마도 그 정점이 이번에 발매하는-발매될-Soul Of Things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스탄코식 리리시즘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스탄코는 자신의 근원에 대해 직접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앨범을 채우고 있는 곡들은 Soul Of Things라는 곡의 13개 변주다. 사물들의 정수, 핵심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제목인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그 텍스트 역할을 해야 할 원 곡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곡부터 Variation이라는 꼬리를 달고 등장한다. 한편 사물의 정수라는 곡에 대한 변주라는 꼬리를 전곡이 달고 있음에도 막상 감상해 보면 각기 곡들은 엄연히 독자적 테마를 지닌 다른 곡임을 알게 된다. 즉 원래부터 Soul Of Things라는 곡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13곡의 다른 곡을 같은 제목에 종속시켰을까? 어디에서 이 곡들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테마를 중심으로 한 변주가 아니라 분위기를 중심으로 한 변주라는 사고에서 이 앨범의 음악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즉, 각 앨범의 곡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한 미니멀한 반복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부분으로서의 각 곡들이 모여 전체를 형성할 때 Soul Of Things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으로 인해 드러나는 앨범의 분위기는 회색 빛 모노크롬이다. 발라드가 주를 이루면서도 단순한 애상적 분위기와는 다른 차원의 감상성이 드러난다. 침묵이 지배하는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회화적인 기조는 개인적인 감정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점이 이 앨범의 연주들이 발라드의 형식을 띄고 있음에도 단순 발라드 앨범으로 보지 않도록 만드는 부분이다. 보통 발라드 곡들은 테마가 구슬프게 전개되면서 애상의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 앨범에 담긴 발라드는 멜로디에서 감성적 요인을 추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매개없이 이미 분위기가 상정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스탄코의 연주는 미리 예상된 음악적인 흐름을 따른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자유로이 반응하는 양상을 띈다. 그런 감정의 동기는 함께 연주하는 폴란드인 트리오에서 나오는 것이다. 피아노 주자 Marcin Wasilewski가 리드하는 이 트리오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차분하게 인상주의적 색채가 드러나는 연주로 스탄코의 솔로에 밑그림을 제공한다.

한편 스탄코가 연주를 리드하는 경우는 매우 오랜만이다. 최근의 앨범들은 단순하지 않은 편성으로 전체를 조율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연출자로서의 스탄코의 모습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단순한 퀄텟의 편성으로 회구하면서 트럼펫 주자로서의 스탄코의 모습이 보다 더 잘 드러난다. 트럼펫 주자로서 스탄코의 연주를 혹자는 Chet Baker, Miles Davis등의 선배 연주자에 원론적으로 비교하지만 필자에게는 동세대 연주자 Enrico Rava의 스타일과 솔로의 전개에서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비슷한 분위기가 74분여 동안 반복되어 지루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귀에 착 들어오는 테마가 부재하기에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들을수록 스탄코만의 회색 빛 사운드가 지닌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6 COMMENTS

  1. 개인적으로 트럼펫 음색을 좋아하진 않는데…이 앨범에서만 그런건지, 트럼펫 소리가 듣는 내내 좋기는 처음입니다.

    아..정말 좋네요!

    • 같은 악기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죠. 토마추 스탕코는 이지적인 톤이 매력입니다. 뜨거운 순간에도 여백을 생각하는 듯한 면이 있죠. ㅎ

    • 저도 모르는 제가 좋아하는 이유를.. 어떻게 이렇게 콕! 집어서 설명을 해주시는지… ^^

    • 아~ 그게요…연주가 아니라, 바로 위에 낯선청춘님이 남겨주신 댓글내용을 말하는 거였어요.

      “뜨거운 순간에도 여백을 생각하는 듯한”.. 이 말에 감동한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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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sz Stanko는 현재 ECM을 대표하는 연주자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트럼펫 연주자다. 그에 비해 지나간 연주자들의 음악에 집착하는 국내 재즈계 전반의 풍토 때문인지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그의 조국 핀란드에서 그의 인기는 슈퍼스타에 가깝다. 그것은 그의 이력이 폴란드 재즈의 역사를 대변할 정도로 폴란드...Soul of Things - Tomasz Stanko (ECM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