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재즈 앨범을 찾아 듣는 것을 넘어 직접 구미에 맞는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인 연주자조차 앨범 발매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일인데 한편으로 이러한 Made In JAPAN 앨범들은 다소 그 스타일의 측면에서 획일화 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피아노 트리오 앨범들은 연주자가 아닌 제작자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즈를 좀 들었다 하는 사람들은 일본 재즈 앨범들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싫증을 내곤 한다. 어쩌면 The Great Jazz Trio의 앨범 역시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감상 전에 “그렇고 그런 앨범이겠군”하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앨범 제작뿐만 아니라 바로 “그 위대한 재즈 트리오”조차 일본에서 기획된 것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다소 하나의 방향성을 지닌 일본 제작 피아노 트리오 앨범에서도 그 자체로도 확실한 자기 색을 지닌 경우가 있음을 알아두자. 바로 뒤늦게 국내에 소개되는 The Great Jazz Trio의 이번 앨범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이 위대한 트리오의 시작은 의외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6년 그 첫 앨범을 발표했었으니 올 해로 30년이 되는 셈이다. 사실 이 트리오는 행크 존스 트리오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트리오는 행크 존스를 제외하고는 몇 차례에 걸쳐 멤버의 변화가 있었다. 그 중 처음의 트리오 멤버는 행크 존스와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였다. 그 이후 알 포스터, 에디 고메즈, 지미 콥, 맷스 빈딩, 빌리 하트, 조지 므라즈 등의 연주자를 거쳐 이번 2002년도 앨범에는 엘빈 존스와 리차드 데이비스가 함께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이번 트리오 편성이 아마도 초기 멤버 이상으로 The Great Jazz Trio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편성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것은 이 앨범이 엘빈 존스의 유작 앨범 형태로 발매되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크 존스와, 엘빈 존스 형제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종종 우리는 행크와 엘빈이 서로 형제였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걸맞게 앨범에 담긴 연주도 매우 훌륭하다.
사실 이 트리오가 펼치는 연주는 그 스타일로 보아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제는 긴장보다는 여유와 안락의 이미지가 더 강해진 50년대 밥의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일 뿐이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세 노장 연주자가 보여주는 호흡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 나는 아직도 새로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자기 표현의 의지가 느껴진다. 바로 여기에 이 트리오의 연주가 단순히 일본 취향의 연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실제 행크 존스의 피아노를 보면 각 곡의 익숙한 테마를 그대로 잘 보존하고 또 아주 멜로디컬한 솔로를 펼치고 있지만 무작정 달콤함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 엘빈 존스도 마찬가지다. 살랑거리는 리듬 연주 외에 강력한 솔로로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낸다. 여기에 리차드 데이비스의 연주는 어떤가? 행크 존스와 엘빈 존스가 전체 사운드의 외관을 책임진다면 그는 사운드의 인테리어를 책임진다. 묵직한 베이스 워킹과 활을 사용한 보잉 등을 통해 사운드의 질감을 조절하고 있다. 이를 위해 힘찬 분위기의 첫 곡 “Caravan”과 “Long Ago And Far Away”를 비교해 들어보기 바란다.
그래서 이들의 연주는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과거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즉, 제작자와 감상자의 취향에 순응하여 과거를 향한 익숙한 연주를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과거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 시간을 즐기며 미래를 향하는 젊은 연주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구장,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일본적일 수도 있는 야구장 사진을 앨범 표지로 사용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사실 이 시대에서 전통적인 재즈를 연주한다는 것은 매우 고루한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적인 스타일은 새로운 사운드를 양산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전통적 힘에 의해 재즈가 미래로 향할 근거를 얻음을 생각한다면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익숙한 메뉴라 하더라도 요리사에 의해 새로운 맛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이 나이든 노장 연주자들은 묵묵히 자신의 혼신을 다한 연주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