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에는 오랜 시간을 흐르면서 형성된 저마다의 음악적 색, 음악적 운명이 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장르에서 사용되지만 이제 트럼펫, 색소폰은 재즈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반도네온은 어떨까? 반도네온이 아코데온과 함께 탱고를 의미한다고 말해도 여기에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반도네온 연주의 거장 디노 살루지가 지금까지 들려준 음악들은 모두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반영하면서도 반도네온의 직선적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적 긴장이 돋보이는 음악들이었다.
이번 앨범 역시 “소로(小路)”라는 의미의 앨범 타이틀처럼 탱고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디노 살루지의 음악 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드럼 연주자 욘 크리스텐센과 함께 순간적인 감흥,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그간의 디노 살루지의 음악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번 앨범에서도 탱고의 아우라가 완벽하게 제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디노 살루지 특유의 따스한 향수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욘 크리스텐센의 드럼과 만나면서 음악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긴장이 감돈다. 크리스텐센은 리듬을 안으로 감춘 채 폴 모시앙에 버금가는 색채적 연주를 들려준다. 그가 살루지의 연주에 반응하는 것을 들어보라. 단속적인 타악기 소리에 음가라도 있는 듯 그의 드럼은 살루지의 감정선을 따라 상승과 하강을 오간다. 바로 여기서 뭉클한 감동이 일어난다. 가끔 마크 존슨 같은 베이스 연주자의 참여를 그리게 되기도 하지만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멋진 듀오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