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보컬 루스 영을 이야기하려면 쳇 베이커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쳇 베이커의 전기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이 책을 쓴 제임스 개빈이 이번 루스 영의 앨범 라이너 노트를 담당했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쳇 베이커의 삶은 음악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그는 피 대신 마약으로 자신의 몸을 채우려 했다 싶을 정도로 평생을 마약을 위해 살았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었다. 이런 그에게는 늘 그를 걱정하는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루스 영이었다. 패션 사진 작가 부르스 웨버가 쳇 베이커를 주제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Let’s Get Lost>에서도 쳇 베이커 곁에 등장했던 루스 영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10년간 쳇 베이커의 연인으로 그에서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다.
쳇 베이커는 루스 영과 헤어지고 난 후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스 계속 노래해”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클럽 공연을 했었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첫 앨범을 녹음하기까지에는 약 2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내가 루스 영의 이번 첫 앨범을 이야기하면서 쳇 베이커와 얽힌 그녀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앨범 안에 담긴 쳇 베이커의 환영 때문이다. 그것은 꼭 루스 영이 앨범 내지에 이 앨범을 쳇 베이커에게 헌정한다고 밝혔기 때문만은 아니다. ‘My Funny Valentine’은 빠졌지만 ‘But Not For Me’, ‘The Wind’, ‘I Fall In Love Too Easily’ 등 쳇 베이커가 평소 즐겨 연주하고 노래했던 곡들로 채운 선곡부터 건조한 스모키 보이스로 혼잣말을 하듯 낭만과 냉소를 오가며 노래하는 그녀의 창법은 쳇 베이커를 연상하다 못해 그를 그리워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The Trill Is Gone’은 역설적이게도 쳇 베이커를 연상시키는 담담한 그녀의 창법을 통해 쳇 베이커와 아픈 사랑을 겪은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 묘한 슬픔을 유발한다.
한편 루스 영은 사운드 연줄에서도 드럼에 제외된 편성을 사용하는 등 쳇 베이커를 많이 생각한 듯싶다. 쳇 베이커 풍의 쿨한 사운드를 위해 그녀가 부른 볼프강 래커슈미트(비브라폰), 허브 겔러(색소폰), 록키 크나우어(베이스) 등은 모두 쳇 베이커와 함께 연주를 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오직 피아노를 연주한 발터 랑만이 쳇 베이커와 관련이 없는데 나는 오히려 그의 피아노가 쳇 베이커의 트럼펫을 대신하면서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루스 영의 이번 앨범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쳇 베이커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정작 앨범에서 루스 영 자신은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쳇 베이커에 대한 추억은 그녀의 삶에서 여전히 현재로 자리잡고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이 첫 앨범을 통해 루스 영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앨범 타이틀이‘This Is Always’이 의미하듯 쳇 베이커는 여전히 그녀에게 현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