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ractory – Refractory (LifeStyle Sounds 2004)

ns  우리는 재즈 보컬 나윤선이 유럽에서 얼마나 큰 인정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통상적으로 유럽에서 통하는 여성 보컬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럽에서 인정을 받아보았자 어느 정도겠냐는 식의 생각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유럽에서 나윤선의 인기는 어느 영화의 카피처럼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건 그 이상”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렇다. 이것은 이미 다른 글을 통해서 밝히기도 했지만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프랑스의 재즈 전문지는 물론 음악인들, 그리고 실제 재즈 애호가들에게서도 나윤선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그녀는 프랑스에 머무르면서 여러 유명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전 통화에서 그녀는 “주앙 르 팽 재즈 페스티벌에서 키스 자렛을 만나게 된다”고 필자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한편 우리는 그녀의 음악적 포용력이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그저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우리에게 심어진 전통적 재즈 보컬의 상을 뛰어넘은 다소 특이한 보컬로 인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앨범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쉬운 서정적 노래에서 갈수록 미래지향적인 공간과 비정형적인 선율을 탐구하는 것으로 변화를 해나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적 관심사는 이러한 변화 이상이다.

그 증거가 이번 앨범에 담겨 있다. 혹자는 Refractory라는 낯선 그룹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나윤선의 이야기만 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나윤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은 이 앨범에서 나윤선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앨범의 주인공은 아니다. 쟝 프랑소와 블랑코(프로그래밍, 키보드, 기타, 베이스 담당)와 루이 보두앙(색소폰과 편곡 담당)으로 이루어진 듀오가 리프랙토리의 공식 멤버이다. 그러나 나윤선은 키보드를 연주한 마티유 제롬과 함께 그룹의 세 번째 멤버 역할로 등장한다.

리프랙토리의의 음악은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일렉트로 재즈다. 그러니까 다양하고 강박적인 테크노 성향의 리듬을 기반으로 그 위에 재즈적 색채를 입혀 나가는 재즈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렉트로 재즈에 있어 샘플링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신 다양한 세션을 직접 사용해 보다 풍부한 질감의 사운드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그 새로운 질감을 위해 나윤선의 목소리가 동원되었다.

사실 나윤선이 자신의 목소리를 어쿠스틱 사운드가 아닌 이러한 일렉트로 사운드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국적인 일렉트로 라운지 뮤직의 대명사격이 된 클로드 샬의 Buddha Bar 시리즈에 그녀의 노래가 사용되기도 했었다. 그것도 한국말로 부른 노래가. 하지만 앨범의 사운드에 중요한 요인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수록 곡의 절반인 5곡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던 청아한 그 목소리지만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자신의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미성을 기반으로 시적으로 노래하던 모습과 달리 이 앨범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육감적이다. 그리고 귀여운 맛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리프랙토리의 두 멤버가 이런저런 기계적 터치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 나윤선은 새로운 사운드 위에서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사운드가 잘 맞는 옷처럼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지난 짧은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어디 뭐 정신을 확 깨게 만들만한 새로운 것이 없느냐며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필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만큼 그녀는 새로운 사운드 위를 자유로이 유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윤선 이야기는 그만하고 앨범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 이미 말했다시피 이 앨범은 일렉트로 재즈 앨범이다. 그러나 사운드의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어느 일렉트로 재즈 앨범보다 사운드의 질감이 풍성하고 다채롭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색다른 리듬 패턴이나 멜로디의 강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저변을 흐르는 공간적인 면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리프랙토리의 두 리더가 재즈적인 입장에서 전체 사운드를 기획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를 위해 “Incantation”을 들어보기 바란다. 스산한 키보드 사운드에서 거대한 바람 속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Coincidence”는 부다페스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원을 받아 사운드의 규모가 확장된 느낌을 준다.

한편 재즈적인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앨범에 동원되었다. 나윤선 밴드의 멤버이기도 한 베이스 연주자 요니 젤닉과 드럼 연주자 다비드 조르줄레를 비롯한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등장하여 감각적인 솔로와 리프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리프랙토리의 이번 앨범을 일렉트로 재즈의 새로운 모범작이라 말하고 싶다. 새로운 질감의 사운드를 추구하면서 리듬에 멜로디를 종속시키지도 않으며 강박적 반복에 자유로운 솔로를 파편화시키지 않은 것은 많은 일렉트로 재즈가 안고 있는 한계점에 대한 의미 있는 해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감상자들은 나윤선이라는 이름 때문에 앨범 감상을 시작하겠지만 이후에는 나윤선을 포함한 전체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일렉트로 재즈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댓글

  우리는 재즈 보컬 나윤선이 유럽에서 얼마나 큰 인정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통상적으로 유럽에서 통하는 여성 보컬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럽에서 인정을 받아보았자 어느 정도겠냐는 식의 생각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유럽에서 나윤선의 인기는 어느 영화의 카피처럼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건 그 이상”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Refractory – Refractory (LifeStyle Sounds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