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연주자 러셀 말론의 연주를 들을 때면 나는 매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그가 빠른 속주를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의 연주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분은 그의 기타 연주가 최근 다양한 이론적 무장을 하고 롹 기타 이상의 새로운 무엇을 경연하는 재즈 기타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러셀 말론의 연주는 첨예한 현대성 보다는 전통적인 성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그의 기타에는 경쾌한 스윙과 이제는 향수의 대상이 되어버린 비밥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여기에 R&B적인 색채까지 띠고 있으니 내가 그의 기타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 그의 라이브를 한 차례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공연 내내 그는 현란한 기타 솜씨보다는 관객과 호흡하며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Max 레이블에서 처음 발표하는 앨범 <Playground>에서도 친근한 러셀 말론의 이미지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앨범은 내지에서 말론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처음으로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이다. 그렇다고 이전 앨범에 비해서 확연하게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론 본인만의 음악적 욕구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잘 반영되어 있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그의 기타와 마틴 베제라노의 피아노가 리드하는 트리오로 이루어진 퀄텟 편성을 기본으로 두 곡의 솔로 곡과 조 록크의 비브라폰, 게리 바르츠의 알토 색소폰이 각각 참여한 퀸텟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음악들은 이러한 편성의 다양성만큼 포스트 밥 스타일부터, 전통적인 스윙감이 돋보이는 연주, 그리고 팝적인 연주까지 여러 가지 러셀 말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편안하고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러셀 말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따스하고 동그란 톤을 지닌 러셀 말론의 기타 연주는 실제 포스트 밥 스타일의 빠른 속주에서도 경쾌한 스윙감을 놓지 않고 있으며 코드들의 복잡한 진행에서도 빼어난 멜로디적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그의 연주들은 노래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러한 멜로디스트로서의 면모는 러셀 말론 본인의 작곡과 편곡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클리셰를 적당히 사용한 푸근하면서 정감 있는 분위기를 지닌 그의 곡들은 이미 한번쯤 들었던 것 같은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이를 위해 “Invisible Colors”를 들어보기 바란다. 반면 카펜터즈의 곡 “We’ve Only Just Begun”이나 캐롤 킹의 “You’ve Got A Friends”는 친숙한 느낌 속에 말론만의 신선함을 불어 넣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러셀 말론의 음악이 지닌 편안한 맛은 분명 음악적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특히 재즈의 전통적인 면을 바탕으로 신선한 맛을 얻기 원하는 감상자들에겐 이 앨범이 큰 만족을 줄 것이다. 부디 이 앨범의 기분 좋은 분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