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은 한국에서 재즈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시절부터 가요 앨범 세션을 하면서도 재즈 연주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명실상부한 한국 재즈의 최고 색소폰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한국 재즈의 모든 것을 다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스무드 재즈 성향의 앨범, 세련된 포스트 밥 사운드의 앨범, 그리고 진보적이고 한국적인 프리 재즈 앨범까지 재즈 연주자로서는 그다지 많은 앨범을 녹음한 것은 아니지만 그 스타일만큼은 다양한 가요 앨범 세션만큼이나 전방위적이다. 이것은 곧 그가 한국 재즈 색소폰의 대표주자로서 얼마나 많은 부담을 앉고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상당히 안타깝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향을 설정하고 매진하여 보다 확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자꾸 주변에서 그에게 이런저런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떤 스타일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느냐고? 프리 재즈도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이고 또 그만큼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포스트 밥 성향의 앨범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Oldies & Memories>에 담긴 사운드 또한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Happy Together”, “You Light Up My Life”,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등의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올드 팝 넘버들을 재즈로 편곡, 연주한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이 앨범에 관련된 소식을 들었을 때 상업적인 고려가 우선된 스무드 재즈 앨범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같은 해에 발매된 앨범 <Moon Illusion>의 프리 재즈에서 상극의 스무드 재즈로 널뛰기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앨범은 그런 가벼운 사운드를 담고 있지 않다. 잘 알려진 올드 팝의 멜로디들을 보존하면서도 재즈의 전통적 측면을 제대로 결합해 편안하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을 무게 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것은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듯하지만 세심하게 공을 들인 편곡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풍부한 비브라토를 지닌 묵직한 톤을 사용한 이정식의 솔로 연주도 과도하게 멜로디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상당히 익숙한 패턴을 조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그가 오랜 시간 가요 앨범 세션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와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같은 곡에서 각각 호란(클래지콰이)과 웅산을 불러 노래하게 한 것도 대중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세션 연주자로 짧은 순간에 자신의 매력을 곡 안에 불어넣는 그만의 능력을 활용하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리라.
아무튼 이정식의 이번 새 앨범은 친숙한 멜로디에 그다지 과용을 부리지 않은 이정식의 매끄러운 연주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몇 해 전에 소기의 성과를 올렸던 누보 송 프로젝트의 앨범 <Nouveau Song>만큼이나 높은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 내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를 아는 많은 감상자들이 그래 이정식의 색소폰은 바로 이런 맛이지 라는 수긍의 평가를 내리게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