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ECM은 여느 해보다 더 수준 높은 앨범들을 많이 선보였다. 정말 ECM 군(群)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앨범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미 잘 알려진 연주자들의 앨범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운 연주자의 발굴에 대한 바람 또한 컸다. 그래서 피아노와 하프를 연주하는 이로 하를라의 앨범은 음악적 성과에 상관없이 그 흥미와 기대가 크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로 하를라는 이번 앨범이 분명 ECM에서의 첫 앨범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ECM과 관련을 맺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난 타악기 연주자 에드바르드 베셀라로 그가 결성했던 사운드 앤 퓨리 그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ECM과 인연을 맺었다.
그녀가 피아노와 하프를 연주한다는 사실은 감상 전부터 묘한 흥미를 유발한다. 유사한 앨리스 콜트레인과의 비교마저 생각하게 하는데 하지만 정작 이 앨범에서 이로 하를라의 매력은 작곡에 있다. 차분하게 하나씩 음들을 쌓아나가고 그 사이에 침묵을 적절히 삽입하여 만들어 낸 그녀의 음악이 지닌 안정적이면서 자유로운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커다란 감상의 재미다. 그 이후에 폴 블레이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법한 그녀의 피아노가 들어오고 색소폰 연주자 트릭베 사임과 트럼펫 연주자 마티야스 에익의 숨가쁜 호흡이 귀에 들어온다. 사실 사운드의 전면에서 제일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두 젊은 연주자의 긴밀한 호흡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트릭베 사임의 일련의 앨범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