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 안의 성공은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거의 90세에 가까운 프랑스의 노장가수 앙리 살바도르에게 주었던”Jardin D’Hiver 겨울의 정원”이 성공을 거두면서 성공의 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렌 안의 성공은 단지 앙리 살바도르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그녀의 모든 앨범을 들어보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그녀만의 세계가 견고하게 확립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음악 세계란 정서적으로 과거를 지향하면서-그녀는 초기에 프랑소와즈 하디의 재림이라 평가 받곤 했다- 사운드는 미래를 향해 있는 세계다.
이러한 그녀의 특징은 통산 4번째이자 두 번째 영어 앨범인 이번 앨범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특히 이번 앨범은 다른 어느 앨범보다 어쩌면 케렌 안의 음악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르는 60년대 70년대 사운드의 향취가 강하게 묻어난다. 눈을 감고 현재를 무시하고 그녀의 노래들을 들어보라. 언제나 안개가 희미하게 끼어 있었을 것만 같은 과거의 한 시대가 연상되면서 이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들이 아련하게 중첩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진행되는 기타와 섬세한 현악 섹션이 전체를 이끄는 나른하고 몽롱한 사운드는 분명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많이 닮았다. 게다가 저 앨범 표지에서 보게 되는 자기 분열적인 케렌 안의 이미지처럼 오버 더빙과 딜레이를 사용한 그녀의 낮고 부드러운 보컬은 희미하게 흔들리는 느낌으로 이 비현실적인 낭만성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앨범의 사운드가 과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케렌 안이 과거의 재현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앨범에 담긴 사운드의 과거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은밀하고 개인적인 케렌 안의 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앨범을 거듭할수록 꿈을 꾸는 듯한 케렌 안의 조용하고 소박한 세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음악이 갈수록 매혹적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앨범의 타이틀은 그녀가 뉴욕 활동시 거주했던 뉴욕 북부의 작은 이태리인 거주지역을 의미한다고 한다. 괜히 “Lolita”의 패러디 정도로 오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