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발매된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는 아무리 재즈가 혁신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무척이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세심한 감상을 하지 않고서는 재즈라 할 수 없는, 오히려 컨트리 쪽에 더 가깝게 들리는 그녀의 노래들은 분명 재즈냐? 아니냐? 라는 논의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확실했던 것은 그녀의 단순 담백한 노래들이 은근히 감상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필자는 그냥 그런 노래라고 그냥 넘겨버렸었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제대로 감상하면서 그간 필자가 잘못 생각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필자가 실예 네가드를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노라 존스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바로 실예 네가드도 노라 존스와 유사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래 역시 재즈의 범주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재즈와 대중음악의 절묘한 경계선상에 간신히 올려놓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게다가 그녀의 보컬은 미국의 보컬은 제쳐두고서라도 깨끗한 미성으로 시적인 감수성을 잔잔하게 표현하는 유럽의 보컬과도 음색이나 창법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여러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래들은 한번 감상자에게 다가오면 떠날 줄을 모른다. 그녀의 노래는 첫 느낌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지만 은근한 매력으로 오래오래 지속된다. 이것은 그녀의 노래들이 음악적인 면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래들은 재즈적인 맛보다는 노르웨이 팝적인 성향이 더 강하기에 음악적으로 여러 의혹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의외로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이러한 의혹들은 힘을 잃는다. 마치 노라 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Nightwatch>는 실예 네가드의 통산 8번째 앨범이자 국내에서는 2001년의 <At First Light>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는 앨범이다. 지난 앨범 <At First Light>은 자국 노르웨이에서는 상당한 대중적 성공과 높은 음악적 평가를 받았으며 국내에서도 기대 이상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사실 필자는 <At First Light>이전에 발매된 그녀의 앨범을 감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At First Light>의 성공이 그녀의 음악 이력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추측을 해본다. 왜냐하면 <Nightwatch>의 전반적인 흐름이 전작의 것을 그대로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번 앨범에도 재즈와 함께 노르웨이의 포크 음악과 대중 음악이 근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연주와 편곡 등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들도 지난 앨범과 거의 같다. 지난 해 독자적인 트리오 앨범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던 토드 쿠스타프센 트리오의 멤버들이 여전히 그녀의 음악을 든든히 지탱하는 조력자로 위치하고 있고 직접 연주도 하면서 곡에 색감을 불어넣는 혼악기 편곡을 담당한 마그누스 린드그렌도 그대로다. 가사도 여전히 미케 맥그루크(Mike McGurk) 담당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작곡도 총 12곡 중 팻 메스니와 데이빗 보위의 영화음악을 새롭게 노래한 “This Is Not America”를 제외하고 모두 실예 네가드가 했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전작의 성공을 안이하게 이어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반영된 앨범이라는 것은 아니다. <At First Light>을 전형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더 음악적 정서적 영역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것은 내적인 화려함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앨범은 겉으로는 하나의 설정된 방향을 각 곡들이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의외로 각 곡들이 하나의 독립된 색을 지녔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앨범의 정서적인 면은 이전 앨범보다 훨씬 더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는 각 곡들은 이전 앨범의 부드럽고 편안한 정서에서 나아가 더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 그 속에 실예 네가드의 개인적 정서를 은밀하게 내포하고 있다. 가냘프면서 촉촉한 실예 네가드의 보컬에 의해 드러나는 이 개인적인 정서는 주로 사랑에 관계된 것이지만 직설적이기보다는 고독, 기쁨, 아늑함 같은 사랑의 경험에서 파생된 개별 정서로 한 차례 치환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앨범을 차분하게 따라가다 보면 마치 혼자서 밤 길 여기저기를 걷게 될 때 만나게 되는 다양한 풍경과 내면의 심리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인 매력은 앨범을 자꾸 반복청취를 하게 만든다. 이것은 비단 재즈에 대한 개념이 그다지 확고하지 못한 감상자나 오래 재즈를 들어온 매니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앨범이 스타일에 대한 규정을 논하기 이전에 감상자를 정서적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앨범을 감상하면서 “재즈적인 맛은 덜하지만 그럼에도 느낌이 좋은데? 신기하네?” 라는 혼잣말 속에 자꾸 그녀의 앨범을 플레이에 걸게 되는 경험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