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히긴즈 트리오와 색소폰 연주자 스콧 해밀턴이 다시 만나서 앨범 녹음을 했다. 여전히 그 주제는 익숙한 스탠더드 곡들이다. My Funny Valentine을 비롯하여 I’m A Fool To Want You, Alone Together 등 너무나도 익숙한 곡들이 연주되었다. 이 정도로 이미 에디 히긴즈의 연주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그 사운드가 어떨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 이번 앨범에 담긴 연주는 음악적 측면에서 본다면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먼저 느껴지는 음악들이다. 트리오가 되었건 퀄텟이 되었건 한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음악.
그러나 이렇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드러움이라고 해서 이 앨범이 대충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사실 극도의 자연스러움은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임을 지나간 여러 재즈 앨범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에디 히긴즈와 스콧 해밀턴의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익숙함, 부드러움은 단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연주자들이 교감하고 함께 연주를 하면서 만들어 낸 결과이다. 만약 이것을 매너리즘으로 본다면 상당한 오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에디 히긴즈와 스콧 해밀턴은 각각의 음악적 성향에서부터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알려졌다시피 에디 히긴즈는 매끄럽고 투명한 피아노 톤으로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를 테마에서 이어받아 뽑아 낼 줄 안다. 그리고 스콧 해밀턴은 풍성한 톤으로 스탄 겟츠 만큼의 분위기 만점의 연주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이 두 연주자가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꼭 있었어야 할 조합이었다. 그리고 그 당위적 조화만큼이나 사운드는 나긋나긋하고 자연스럽다. 스콧 해밀턴은 과거보다 묵직해진 톤으로 여유 있게 테마의 멜로디들을 뽑아 내고 있으며 에디 히긴즈와 그 트리오 멤버들은 능숙하게 색소폰 주변을 맴돌며 사운드를 매끄럽게 닦아 나간다. 그래서 전체 사운드는 한없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새 앨범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느낌을 준다. 물론 여기에는 이들의 음악적 성향이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하는, 그래서 1950,60년대 하드 밥과 쿨의 장점을 섞은 음악을 지향한다는 데 있지만 역시 연주자로서의 존재를 드러내기 보다는 이들이 합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음악을 스무드 재즈라 부르고 싶다.
실제로 엄밀히 말하면 이 앨범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도대체 어떤 연주가 펼쳐지는가 확인하면서 감상하기엔 부적합한 앨범이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것처럼 이 앨범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이기 보다는 우리가 기분 좋게 들어왔던 바로 그 음악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듯 진지하게 음악과 마주하는 감상보다는 하나의 배경음악으로서 가벼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들을 때 이 앨범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에디 히긴즈와 그 동료들이 감상자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