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칸 영화제 개막 작은 <중경삼림>을 시작으로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 <2046> 등 만드는 영화마다 대중과 평단의 높은 지지를 받아온 왕가위 감독의 신작 영화 <My Blueberry Night>이었다. 이 영화는 특히나 왕가위 감독이 3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 발표하는 영화라는 점, 처음으로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레이첼 와이즈 같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과 작업한 영화라는 사실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의 흥미를 돋우었던 것은 주인공이 바로 노라 존스라는 사실이었다. 알다시피 노라 존스는 재즈와 팝을 넘나드는 음악으로 성공을 거둔 가수이지만 영화 경력은 일천한 인물이 아니던가? 물론 이전에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지만 그것 모두 음악과 관련되어 노래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다. 따라서 노라 존스의 기용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그런데 왕가위 감독이 노라 존스를 주연으로 기용한 이유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에서 영화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이 영화를 노라 존스로 인해 제작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감독한 모든 영화에 탁월한 음악적 심미안을 보여주었던 왕가위 감독이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명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노라 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는 제작되어 지난 해 칸느 영화제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개봉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사운드트랙 앨범이 전세계에 발매되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어떨까? 평소 영상만큼이나 음악에도 큰 관심을 보였던 왕가위 감독에 감독의 영화만큼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음악을 들려준 노라 존스가 만났으니 영상만큼 개성 있고 인상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결과부터 말한다면 역시나 인상적인 음악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노라 존스는 배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는지 “The Story” 단 한 곡만 노래했다. 하지만 그 한 곡만으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녀 특유의 컨트리 웨스턴 풍의 사운드와 왕가위 감독 말대로 서사를 담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도시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왕가위 감독의 이전 영화처럼 그의 개인적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여 수성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즉, 감독이 평소에 들으며 영화적 영감을 얻었을 범한 기존 음악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개성파 재즈 보컬 카산드라 윌슨이 노래한 “Harvest Moon”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노라 존스가 도시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해준다면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는 고독 자체를 담담히 건드리는 듯하다. 그 외에 새로이 떠오르는 도시적 포크 음악의 기수 에이모스 리, 그리고 인디 록 가수 캣 파워 등의 건조한 노래가 등장한다. 그런데 많은 감상자들은 이전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깊은 인상을 남기는 올드 팝 넘버가 사용되지 않았나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오티스 레딩의 “Try A Little Tenderness”를 비롯하여 마비스 스테이플, 루스 브라운 등의 소울, 블루스 성향의 올드 팝 넘버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을 위해 라이 쿠더가 새로 만든 황량하고 고독한 블루스 풍의 연주곡 세 곡도 들을 수 있다.
한편 영화와 상관없이 이번 사운드트랙 앨범은 그 자체로 훌륭한 모음집 앨범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지닌 분위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것은 상처 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다. 한번 사운드트랙을 먼저 듣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