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거리는 잠옷에 가까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 여인이 콘트라베이스를 애인처럼 안고 살짝 웃음을 짓고 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강조된 사진을 표지로 사용해온 비너스 레이블의 성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이미지다. 그리고 사진 속의 여성이 이 앨범의 주인이라면 사진의 분위기상 그녀가 노래를 하리라 예상하게 된다. 맞다. 이 앨범의 주인인 니키 패럿은 고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보컬이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한번 보면 그녀가 안고 있는 콘트라베이스가 심상치 않다.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소품으로 보기에는 콘트라베이스가 너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맞다. 니키 패럿은 노래와 함께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한다.
사실 니키 패럿은 노래를 하기 전에 콘트라베이스를 먼저 연주했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만약 비너스 레이블에서 발매된 앨범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감상자라면 한번 2003년에 발매된 피아노 연주자 레이첼 Z의 앨범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를 살펴보기 바란다. 베이스에 니키 패럿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니키 패럿은 베이스 연주자로 먼저 입지를 다졌다. 그녀가 태어난 호주를 떠나 뉴욕으로 오게 된 계기도 베이스 연주자 루퍼스 라이드에게 베이스를 사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그녀는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꿈이 있었고 또 이에 걸맞게 켄 페플로프스키, 데이비드 크라카우어, 마이크 녹 등 개성 있는 연주자들과 협연을 하며 베이스 연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베이스 연주자로서 지속적인 연주활동을 하면서 노래에 대한 열정을 은근히 키워나갔던 모양이다. 실제 그녀는 2000년부터 깁슨 기타의 모델이기도 한 전자 기타의 혁명가 레스 폴이 이끄는 밴드에서 노래를 해왔다. 그리고 틈틈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왔는데 이것이 레이첼 Z의 앨범 녹음을 할 때 비너스 레이블의 제작자 테츠오 하라의 귀에 들어갔고 그 결과 보컬로서 이번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 한다.
이 앨범에서 니키 패럿은 부드러우면서도 결이 있는 포근한 목소리로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육감적으로 노래한다. 그런데 그 맛이 베이스를 주로 연주하며 노래를 가외로 해온 것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듣기에 부담 없는 편한 노래를 하면서도 그것이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분위기로 흐르지 않아서 좋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예상 가능한 분위기로 노래하지만 지루하다거나 뻔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특히 적당히 리듬을 타며 활력적 긴장을 불어넣는 모습은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다. 실제 앨범은 니키 패럿의 보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존 디 마티노의 피아노, 폴 마이어스의 기타, 해리 알렌의 색소폰 사이에서 간간히 반짝거리는 그녀의 베이스 연주 또한 들을 수 있다.
사실 베이스는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 악기다. 반면 보컬은 사운드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 소화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베이스 연주자의 보컬 앨범은 그리 많지 않다. 짐 퍼거슨 정도가 있을까? 따라서 니키 패럿의 이번 앨범은 고혹적인 보컬 앨범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노래하는 베이스 연주자의 앨범으로서도 관심을 가져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