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양한 한국 연주자의 재즈 앨범들이 발매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에서 재즈 앨범을 제작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 최근 제작된 여러 한국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들은 대부분 자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장은 모르겠으나 두 장, 세 장 꾸준히 앨범을 녹음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보통 한국을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로 인정 받고 있는 이정식만 해도 그 화려한 경력과 오랜 활동에 비해 그의 디스코그라피는 매우 적다. 그리고 그 앨범들도 그 때와 제작자에 따라 사운드의 질이 모두 다르다.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라는 수식의 무게만큼 이정식에게는 한국적 재즈-도대체 어느 것이 한국적 재즈인지 알 수 없지만-에 대한 의무가 강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정작 그는 “한국 사람이 연주하면 한국 재즈가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음악과 결합한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강한 부담으로 작용했던 듯싶다. 하지만 이와 함께 그는 프리 재즈에도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많은 색소폰 연주자들이 존 콜트레인을 동경했던 것처럼 그 역시 존 콜트레인처럼 프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자유로운 연주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꿈꾸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나 한국에서 프리 재즈를 앨범으로 만든다는 것은 더욱 더 요원했던 일인만큼 프리 재즈는 어쩌면 이정식에게 가장 완벽한 연주자로서의 자유를 획득하는 순간을 대변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모처럼 발매되는 그의 새로운 앨범 <Moon Illusion>은 바로 위에 언급한 한국적 재즈에 대한 의무, 강박에서 벗어나는 한편 자신만의 프리 재즈를 펼치고 싶은 갈망을 동시에 해결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즉, 프리 재즈를 추구하면서도 그 사운드의 질감은 상당히 한국적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프리 재즈와 한국적 색채가 연결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구조 자체의 해체보다는 새로운 구조의 즉흥적 확립을 추구하는 프리 재즈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무조건 틀 밖으로 나가려 하기 보다는 새로운 구조의 경계를 형성하려는 듯한 모양새를 띈다. 그렇기에 그의 프리 재즈는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구조적이다. 한편 그는 그의 주 악기인 색소폰 외에 베이스 클라리넷, 아이리시 플루트, 반수리, 식금 등 다양한 이국적 민속 악기의 사용을 통해 색다른 질감을 사운드에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은 개인적인 선에서 끝나는 것 같다. 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자가 필요했다. 물론 앨범에 참여한 다른 세 연주자들이 이정식과 제대로 된 호흡을 들려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식의 연주, 이정식의 순간적 흐름에 그렇게 매끄럽게 반응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소 이정식의 진행을 따르는데 충실했다고나 할까? 하긴 이런 종류의 사운드를 접하고 예상할 수 있는 연주자는 여건상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긴밀한 밴드 연주가 있었다면 보다 더 다채롭고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이정식 개인만의 카리스마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이 앨범을 계기로 이정식은 앞으로 연주자 자체에 머물지 않고 사운드를 구상하고 구성하는 큰 기획자의 시선으로 더 큰 음악을 하리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