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드럼 연주자들의 리더 앨범을 보면 평소 드럼을 연주하며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멜로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던가 아니면 평범한 그룹 리딩 능력에 초점을 둔 경우가 참 많다. 이것은 사실 드럼이라는 악기가 지닌 특수성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앞으로 나서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운드의 조화가 깨지고 나아가 그다지 음악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이상적인 드럼 연주자의 앨범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작, 편곡 및 그룹 리딩 능력과 함께 드럼 연주자로서의 면모가 자연스레 함께 드러나는 앨범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팻 메스니 그룹의 드럼 연주자로 잘 알려진 안토니오 산체스의 첫 리더 앨범은 바로 이러한 이상적인 드럼 연주자의 앨범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 앨범에 담긴 연주를 들어보면 섬세한 작,편곡, 그룹 리딩 능력과 함께 시종일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드럼 연주를 만나게 된다. 또한 그럼에도 드럼은 어디까지나 색소폰 등의 다른 악기를 뒷받침하는 위치에 제대로 자리잡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앨범의 사운드는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듯 모든 악기들이 입체적이고 선명한 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모든 악기가 한꺼번에 귀에 들어오는 사운드에 감상자들은 어쩌면 음악을 듣는 자신의 귀가 훨씬 더 폭넓어졌는가 의심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사운드는 단순히 연주 차원에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 밴드의 구성, 편곡 차원에서 섬세하게 고려된 것이다. 그러니까 복잡 화려한 드럼 연주를 자연스레 강조하기 위해 곡의 진행을 극적인 변화가 많은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배려가 바탕이 되었기에 안토니오 산체스는 사운드의 전후를 오가며 솔로와 반주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드럼 솔로에 할당된 부분이 많지 않음에도 화려한 드럼 연주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편성에 있어서 안토니오 산체스는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배제하는 대신 두 명의 색소폰 연주자 크리스 포터와 데이비드 산체스를 기용했다. 이렇게 피아노를 배제한 것은 피아노에 가리워질 수 있는 드럼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였고 좌우로 색소폰을 배치한 것은 피아노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사운드의 무게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앨범은 리듬적으로 자유로우면서 공간적으로는 여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크리스 포터와 데이비드 산체스는 때로는 경쟁적 관계로 때로는 모든 속주가 혹시 미리 작곡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긴밀함으로 공간을 메운다. 따라서 두 대의 색소폰과 드럼이 형성하는 힘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이 앨범 감상의 가장 큰 재미라 하겠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안토니오 산체스 팻 메스니 그룹의 관계, 그리고 실제 팻 메스니와 칙 코리아가 참여했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둘 지 모르겠다. 물론 이 두 대가의 참여는 충분한 흥미를 끌고 연주 또한 큰 만족을 준다. 그러나 진정 이 앨범의 묘미를 느끼고자 한다면 기본 밴드의 연주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