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안 슈어는 전통적인 여성 재즈 보컬의 계보를 잇고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유연한 보컬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흑인들의 전유인 강한 소울 필링의 노래를 소화하는 동시에 백인 풍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노래를 소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브라스 섹션이 분수처럼 치솟는 강렬한 빅밴드에 맞서 열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으며 동시에 퓨전 풍의 사운드를 배경으로 힘을 살짝 빼고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며 노래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천후 보컬리스트라는 것인데 그녀의 이러한 탄력성은 지속적으로 현재 이 시점에서 재즈가 요구하는 보컬의 모습과,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노래 속에는 곡의 스타일과 상관없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이러한 능력을 지닌 보컬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아직 그녀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분명 지금의 여러 재즈 보컬들 중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보컬임에 틀림없다.
이번에 발매되는 역시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다양한 텍스쳐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이전 그녀의 앨범들과 차별성을 지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보컬, 연주들이 하나의 분위기 아래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는 앨범 타이틀처럼 어두운 한 밤(Midnight)과 앨범 표지처럼 흥겨운 순간들이 지나가고 남은 어두운 카페라는 공간의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을 듣다보면 이미 앨범에 설정된 분위기, 공간이 전혀 낮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물론 그녀의 노래와 음악들 그 자체가 예측가능한 편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막연하고 일반적인 느낌을 벗어나 감상자 개인의 직접적인 과거를 되짚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이러한 데자 뷔(Déjà Vu)는 바로 배리 매닐로우의 <2:00 AM Paradise Cafe>(Arista 1984) 때문이다. 다이안 슈어 본인도 다른 일반적인 감상자들 처럼 배리 매닐로우가 연출해 냈었던 잠못들게 만드는 그 새벽 두시의 달콤한 낭만을 잊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녀는 의 제작을 배리 매닐로우에게 의뢰했고 그와 함께 앨범의 마지막 곡까지 노래했다. 게다가 <2:00 AM Paradise Cafe>의 수록 곡이었던 “When October Goes”와 “Good-Bye My Love”를 노래하고 카린 앨리손, 브라이언 맥나잇 등을 초빙해 듀엣으로 노래하는 구성까지 취하고 있으니 <2:00 AM Paradise Cafe>의 분위기가 이 앨범에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세밀한 부분에서 각 곡마다 조금씩 사운드의 변화를 주어가며 노래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앨범이 무척이나 안정적인 면을 띄면서도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배리 매닐로우가 <2:00 AM Paradise Cafe>를 녹음하면서 어덜트 컨템포러리 가수로서 재즈를 멋드러지게 소화할 수 있음을 보려주려 했다면 반대로 다이안 슈어는 위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그녀의 보컬 능력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앨범은 재즈뿐만 아니라 보사노바, 어덜트 컨템포러리 뮤직, R&B등 한 밤의 카페에 어울리는 모든 스타일의 음악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렇게 해서 20년 전(벌써!) 파라다이스 카페는 다시 다이안 슈어를 통해서 닫았던 문을 연다. 단지 시간이 새벽 두시에서 자정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은 같다. 이 한동안 잊혀졌던 추억의 카페의 분위기는 여전히 감미롭고 부드러운 것이어서 감상자는 현실을 잊고 그 달콤함속에 무한정 안주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