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Almost Full – Paul McCartney (Hear 2007)

익숙함을 유지하며 젊게 다가오는 폴 매카트니의 감수성

pm

1.

한 뮤지션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기에는 뭐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특히 요즈음은 “외모”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또한 영상과 음악이 함께 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일견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논의를 음악으로 국한시킨다면 저는 새로움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음악을 할 때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즉 매번 친근하게 다가오면서도 전과는 다른 무엇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말은 쉽지 실제 그런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황금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폴 매카트니의 경우 대중들은 아마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틀즈나 윙스 시절의 음악을 기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폴 매카트니가 이런 음악을 한다면 한쪽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우려먹고 산다느니, 계속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느니 하는 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은 폴 매카트니의 음악과 함께 나이를 먹은, 그래서 이제는 중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 지긋한 감상자들에게서나 호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경우 폴 매카트니는 추억의 가수에 지나지 않겠죠. 그러므로 폴 매카트니에게 비틀즈나 윙스 시절의 음악은 자신의 화려한 과거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산일 것입니다. 그 산을 새로운 감수성으로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대중적 호감을 이끌어 내야 하죠.

그래서일까요? 폴 매카트니는 지금까지 실로 많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도 있고 반대로 이전만 못하다는 평을 들었던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클래식 앨범도 녹음하고 있죠? 아무튼 그의 음반 이력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분명 그 일련의 음반 이력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오래된 감상자들만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노래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가 어느덧 65세, 이제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감수성은 20대, 한창 비틀즈 소속으로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 내던 그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번 그의 21번째 앨범이 되는 <Memory Almost Full>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에서는 65세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나이를 초월하겠다는 듯한 경박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 다양한 시도를 거치며 자신을 지키며 새로움을 받아 들일 줄 아는 관조와 여유가 느껴집니다.

2.

폴 매카트니가 이 앨범을 생각했던 것은 지난 2005년에 발표했던 20번째 앨범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이전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과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지난 2003년 가을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가지며 작업을 시작하다가 갑작스레 나이젤 갈리치와 함께 했던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앨범부터 제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20번째 앨범의 모든 활동이 끝나면서 다시 이번 앨범 작업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앨범 타이틀대로 이런저런 앨범에 대한 생각들이 차고 숙성되었을 때 앨범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앨범에 담긴 모든 곡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탄탄하게 짜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간결하게 할말을 하고 곡을 끝내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만족감은 아주 오래 남습니다. 게다가 솔로 활동 초창기 시절의 명반 <McCartney>(1970)에서 보여주었던 원맨 밴드 방식을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의 절반 이상의 곡에 적용했기 때문일까요?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도 상당히 개인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서로 이어지는 앨범의 마지막 5곡의 경우 폴 매카트니가 아예 마음먹고 과거를 회고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앨범에서 이런 개인적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마지막 5곡을 들어보면 비틀즈나 윙스 시절의 음악을 저절로 연상하게 됩니다. 그 외에 “Gratitude”, “Ever Present Past”나 “See Your Sunshine”같은 곡 또한 비틀즈나 윙스 시절을 추억하게 합니다. 사운드의 질감 역시 그렇습니다. 복고적인 공간감을 연출하며 울리는 건조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는 분명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폴 매카트니가 이렇게 과거에 대한 시선으로만 이번 앨범을 제작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틀즈나 윙스를 추억하게 하는 익숙함을 배경으로 그는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모습은 오래된 감상자가 아닌 이제 막 폴 매카트니의 음악을 알게 된 젊은 감상자, 비틀즈 사운드를 모델로 삼은 젊은 밴드들의 음악을 들어 온 감상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실제 저는 역설적이게도 폴 매카트니의 음악에서 비틀즈의 음악을 따르는 젊은 밴드들의 음악을 듣고 폴 매카트니가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기 위해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폴 매카트니의 변하지 않는 작곡 능력, 특히 자신의 삶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찾아 내는 능력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킬 멜로디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앨범의 모든 수록 곡들은 어떤 곡이 좋다고 함부로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자기만의 색으로 호감을 유발합니다. 마치 과거 비틀즈의 곡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3.

한편 이번 앨범은 콩코드 레코드사와 커피로 유명한 스타박스가 공동 설립한 레이블인 Hear Music의 첫 번째 앨범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 음반 매장 외에 스타박스 커피 매장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의 스타박스 매장에서도 이번 폴 매카트니의 앨범을 듣고 구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앨범 <Flaming Pie>(1997) 이후 최근 10년간 폴 매카트니가 발표한 스튜디오 앨범들이 마음에 듭니다. 한동안 세월의 흐름 속에 사그라질 것만 같았던 그의 음악적 감수성이 새로운 젊음을 찾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이번 <Memory Almost Full>은 폴 매카트니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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