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적으로 재즈는 연주자에 있어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유달리 보컬에 있어서 만큼은 여성들이 숫적으로나 인기에 있어서나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지만 재즈를 듣는 사람의 성비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도 많은 여성 신예 보컬들이 등장하고 있고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현재 여성 보컬들의 경향은 가벼움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커다란 재즈 보컬의 화두였던 노라 존스를 비롯한 새로 등장한 여성 보컬들의 목소리는 흔히 우리가 재즈에서 기대하는 끈끈한 소울 필링이 묻어나는 그러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미 3대 디바를 통해 진하고 깊은 목소리의 재즈 보컬이 완성되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이 시대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보컬을 원하기 때문일까?
남성 보컬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까지 남성 재즈 보컬은 여성의 3대 디바처럼 하나의 확고한 기준이 될 만한 존재가 부재했었고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은 재즈의 영역을 벗어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달콤한 백인 취향의 보컬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가수라는 범위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남성 재즈 보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보다 더 음악적인 견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 시키려 하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로 커트 엘링을 들 수 있는데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그 명확한 증거가 될 듯싶다. 왜냐하면 이 앨범에서 보컬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스토리 텔러로서의 커트 엘링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것은 단순히 그가 작곡도 하고 편곡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앨범의 수록곡을 살펴보기 바란다. 이 번 앨범의 주를 이루고 있는 곡들은 모두 팻 메스니,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 커트니 파인, 밥 민처등 각자 연주에 있어서 선이 굵은 인물들의 곡이다. 필자에겐 이러한 선곡이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연주자가 작곡한 곡들은 연주자 자신들의 솔로 연주 스타일을 고려하여 작곡되었고 또, 노래에는 그다지 많은 가능성을 할애하지 않는, 연주 자체를 위한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스탠다드 곡들을 노래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러한 곡들에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커트 엘링은 이들의 곡에 자신의 언어를 입혔다. 그리고 각 곡마다 그만의 시성, 감성을 불어 넣었다. 그 결과로서의 음악은 현대 재즈 보컬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성공적이다.
한편 커트 엘링은 이들 곡에 자신만의 감수성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원곡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 재즈가 테마에 대한 즉흥 연주로 이루어져 있듯이 엘링의 감수성은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원곡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각 곡마다 원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를 커트 엘링이 고려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로 팻 메스니의 “Minuando”를 노래하면서 특별히 팻 메스니 그룹의 멤버였던 폴 워티코를 초빙한다던가 커트니 파인의 곡을 노래할 때 자신의 목소리에 살짝 이펙터를 거는 등의 방식으로 그가 설정한 앨범 전체의 유기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곡을 연상할 수 있는 요인들을 적절히 배치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무조건 적으로 커트 엘링의 기교적인 창법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노래의 기교적인 면을 살짝 뒤로 하고 참여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면을 보여준다. (사실 연주를 위한 곡을 노래한다는 그 자체로 기교가 필요없이 보컬 자체의 역량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앨범 표지에 초빙의 형태로 비브라폰 연주자 스테폰 해리스와 피아노와 키보드 연주자 로렌스 허브굿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연주자들과 색소폰의 짐 가일로레토를 중심으로한 연주 섹션은 커트 엘링의 힘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테너 목소리와 등가관계를 형성하면서 엘링의 과도한 자기표현을 자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감상의 관심을 단순히 가사와 노래가 아닌 전체적인 음악 그 자체에 두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커트 엘링의 이번 앨범은 보컬이 리드하는 앨범이지만 보컬 앨범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연주 앨범의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비약하게 된다.
사실 필자는 이전에 발표된 일련의 커트 엘링의 앨범을 통해서 그의 노래 실력을 인정했음에도 전투적으로 사운드를 압도하려는 식의 그의 보컬 진행 방식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고지만 정이 덜 갔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들려주고 있는 그의 보컬은 물론 음악을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모습을 통해 역시 현재 남성 재즈 보컬은 그가 이끌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보컬리스트보다 연주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커트 엘링의 이번 앨범은 이 시대의 음악적 진지함이 배어 있는 멋진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