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시아 바버는 현재 다이아나 크롤과 함께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을 대표할만한 인물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파트리시아 바버는 다이아나 크롤과는 다른 차원에서 재즈 보컬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앨범들은 보컬리스트로서, 작, 편곡자로서,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파트리시아 바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바버의 모습이 종합되어 만들어진 음악 역시 매우 독특한 향취를 느끼게 해주는데 미국보다는 유럽에 더 가까운 분위기를 지닌 음악이라 하겠다. 그런 이유로 파트리시아 바버는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인기는 매우 높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앨범이 올해 3월과 4월 프랑스의 세 도시, 그러니까 메츠, 라 로쉘, 그리고 파리에서 가졌던 콘서트를 수록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파트리시아 바버 역시 프랑스를 좋아하여 프랑스에서 공연하는 것을 매우 즐기는 모양이다.
“나는 언제나 프랑스를 좋아했다. 사람들, 언어, 음식과 와인 들을 좋아하며 특히 파리를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특별히 내가 프랑스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싫증을 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내 음악과 유사한 점이고 이런 이유로 나는 프랑스 인들과 나 사이에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바버의 말처럼 공연 내내 바버는 “Dansons La Gigue”같은 불어로 작사된 그녀의 곡을 노래하는 것은 물론 곡과 곡 사이에서도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청중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다. 공연의 성공은 사실 탁월한 연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그날 그 상황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분위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이러한 관객과 바버의 교감은 앨범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음악적인 부분 또한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공연을 통해 드러나는 바버의 모습은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침잠하는 듯한 우울한 음색의 보컬과 다소 읊조리는 듯한 창법은 변하지 않는 그녀만의 매력으로 청중을 고요하면서도 내적으로 많은 요동이 있는 세계로 안내하고 있으며 시적 긴장으로 가득 찬 사운드 역시 롹적인 느낌부터 우울한 정적의 분위기까지 바버의 다양성과 일관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공연은 공연장의 실제 면적과 상관없이 작은 카페, 클럽에서 펼쳐지는 어느 평범한 날의 소박한 공연 같은 분위기를 띈다. 하지만 라이브였던 만큼 기존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감동의 순간들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룹의 리더로서 파트리시아 바버의 존재가 강하게 드러날 때이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바버는 보컬뿐만 아니라 피아노 솔로와 그룹 연주에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진수가 이번 앨범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Crash”가 된다. 바버의 노래 대신 그녀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닐 알제의 기타가 전면에 나서고 다시 몽크적인 느낌을 유발하는 바버의 피아노가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면서 관객을 희열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한편 이 프랑스 공연에는 기타의 닐 알제, 베이스의 마이클 아르나폴, 드럼의 에릭 몬츠카, 이렇게 그녀의 지난 2002년도 스튜디오 앨범 <Verse>(Blue Note)에 참여 했었던 연주자들이 바버와 함께 하고 있다. 나름대로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세 연주자가 펼치는 연주는 단순히 파트리시아 바버를 보조하는 차원을 벗어나고 있다. 만약 이 공연이 단지 파트리시아 바버 혼자에게만 조명이 비추어졌었다면 그다지 큰 감동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상호 교감, 상호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은근하게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마이클 아르노폴의 베이스 연주는 어떠한 형태의 곡에서도 빛을 발하면서 이 공연이 한 여성 보컬 혼자의 것이 아니라 그룹의 공연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한편 앨범에는 기존에 들을 수 없었던 바버의 새로운 작곡 “Gotcha”와 “White World” 포함하여 바버의 자작곡 5곡과 기존의 커버 곡 5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바버만의 스타일로 편곡되어 있지만 그 세부적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실제 “Witchcraft”같은 스탠더드 곡은 전형적인 미디엄 템포의 메인스트림 스타일로 연주되고 있으며 “Call Me”같은 보사노바 스타일의 곡도 노래되고 있다. 이렇게 바버가 공연을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선택했음에도 어느 하나 모난 부분이 없이 하나의 완벽한 프로그램을 형성하는 것도 이들 세 명의 연주자들의 힘이 크다.
요컨대 이번 파트리시아 바버의 실황 앨범은 그녀의 음악적 장점들을 가감 없이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녀가 현대 재즈에서 보컬이자 피아노 연주자, 그리고 그룹 리더로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녀의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한국의 애호가들에게는 무엇보다 이 깨끗하게 녹음된 앨범을 들으면서 “나도 파트리시아 바버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정말 그녀의 공연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