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피아노 연주자 케틸 뵤른스타드를 좋아하는 감상자라면 그가 1990년대 ECM 레이블을 통해 발표했던 물을 주제로 한 일련의 앨범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1993년 <Water Stories>를 시작으로 <The Sea>(1994), <The River>(1997), <The Sea II>(1998)로 이어졌던 이 앨범들에서 케틸 뵤른스타드는 그가 지니고 있던 강과 바다에 대한 상념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특히 기타 연주자 테르에 립달, 첼로 연주자 데이비드 달링, 드럼 연주자 욘 크리스텐센을 기용해 퀄텟 편성으로 녹음했던 물 가운데서 바다를 주제로 한 두 장의 앨범은 케틸 뵤른스타드의 상상력과 서정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그가 표현한 바다는 단순한 침묵의 바다가 아니라 그 아래로 역동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장엄한, 그래서 슬프기까지 한 풍경의 바다였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장엄함은 그룹 멤버 가운데 테르예 립달의 일렉트릭 기타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기타는 마치 하늘에서 바다를 넓게 조망하는 듯한 광활한 느낌을 주었다. 이것은 케틸 뵤른스타드와 테르예 립달이 지난 2005년 독일 라이프지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졌던 공연을 담고 있는 이번 새 앨범을 통해 새삼 확인된다. 실로 두 연주자가 오랜만에 그것도 듀오로 한 무대에 섰던 이 공연의 프로그램은 <Water Stories>와 <The Sea>의 수록 곡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테르예 립달의 리더 앨범 <If Mountains Could Sings>(1994) <Skywards>(1996)의 수록 곡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케틸 뵤른스타드의 바다와 테르예 립달의 산과 하늘이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련한 동경을 담고 있는 케틸 뵤른스타드의 정갈한 피아노, 비상의 욕망을 담고 있는 테르예 립달의 몽환적인 기타가 만들어 낸 장엄하면서도 슬픈 정서는 두 연주자의 아름다웠던 90년대의 호흡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두 연주자의 90년대 특히 케틸 뵤른스타드의 물을 주제로 한 음악에 감동했던 감상자들이라면 이번 앨범에서 신선한 데자 뷔(Déjà vu)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사운드는 듀오 연주임에도 이전 그룹 연주만큼 꽉 찬 느낌을 준다. 테르예 립달의 기타가 멜로디와 공간적 울림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을 뿐더러 케틸 뵤른스타드 역시 공연과 일렉트릭 기타와의 듀오라는 점을 고려하여 평소보다 강한 타건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연주자가 만들어 낸 거대한 정서적 울림은 오히려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실제 공연 현장에 있었다면 눈물을 흘릴 감상자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