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발매된 허대욱의 첫 앨범 <To The West>(Huks 2006)은 풍부한 상상력과 낭만적 감수성을 지닌 피아노 연주자의 출현을 알렸던 멋진 앨범이었다. 그런데 이 앨범 이후 허대욱은 돌연 프랑스로 떠났다. 이유는 공부를 하겠다는 것. 그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마도 유럽 연주자들의 클래식에 기반한 풍부한 감수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인 멜로디 흐름을 통한 즉흥 연주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그의 첫 앨범에 담긴 연주를 살펴보면 브래드 멜다우, 키스 자렛의 영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주축이 된 시적이고 서정적인 연주가 기본이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번 그의 두 번째 트리오 앨범은 그렇게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의 결과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한 차원 더 발전한 그만의 감성적 연주를 담고 있다.
사실 기본적으로 이번 두 번째 앨범의 연주 방향은 그의 첫 앨범과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주제를 확장 발전시키는 능력은 한결 더 나아졌다. 즉, 첫 앨범이 곡을 구성하고 설정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주는데 치중했다면 이번 앨범은 구성된 곡을 솔로 연주와 인터플레이로 극적인 전개를 하는데 더 치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수록 곡이 줄어든 대신 각 곡의 연주 시간이 대폭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허대욱의 연주에서 동기를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멜로디적인 연주에도 불구하고 그 연주자 무조건적으로 낭만성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것에 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것은 시를 스는 듯한 서정성 아래로 끊임없이 흐르는 리듬과 템포에의 관심 때문이다. 즉, 오른손의 시정을 위해 결코 왼손의 에너지를 위축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앨범 타이틀 곡을 비롯한 수록 곡들의 제목들이 “Virage 선회”, “La Surface Vibrante 진동하는 표면”, “Chemin Etroit 좁은 길” 등의 동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단순히 서정적 멜로디의 즉흥성만을 탐구하지 않고 서정적 멜로디와 이를 진행시키고 가두기도 하는 리듬간의 긴장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튼 나는 멜로디와 리듬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런 자세야 말로 그가 보다 더 폭넓은 지역의 감상자들에게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피아노 연주자로 성장할 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이번 앨범의 트리오는 역시 프랑스에서 수학하고 있는 김윤태(드럼)와 필립 라카리에르(베이스)로 구성되었다. 나름대로 프랑스 현지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트리오라고 생각되는데 실제 대부분의 해외 유학파 연주자들이 앨범은 국내에서 발매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과 달리 허대욱의 이번 앨범은 프랑스 현지에서도 발매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공연 활동도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허대욱의 이번 앨범은 그의 학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의 음악적 로드 맵의 과정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앨범을 감상하며 부디 그가 유럽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함께 바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