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Roger Caussimon L’integrale 1970-1980 (Saravah 2003)

jrc우리는 보통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외국인의 시각과 달리 정작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를 과학과 기술의 나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금은 바리에테 프랑세즈 (Variété Française)라고 해서 언어만 다른 것을 제외하고 갈수록 영미 팝음악과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텍스트와 음악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대중 음악은 한두 번 듣고 지나칠 수 없는 깊은 예술적 향취를 지니고 있다. 그 중 레오 페레, 조지 브라상스, 자끄 브렐 등은 많은 대중 음악의 스타 속에서 음유 시인이라는 호칭으로 기억될 정도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기에 쟝 로제 코시몽의 음악을 포함시킬 수 있다.

분명 쟝 로제 코시몽의 음악은 위에 언급한 세 인물에 버금가는 깊이를 지녔다. 그럼에도 그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던 것은 그의 음악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그의 재능 때문이었다. 1918년 생인 그는 18세에 연극 배우로 데뷔한 이래 1985년 세상을 뜰 때까지 배우, 시인, 작사 작곡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이들 활동 모두 각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는 다수의 연극과 영화, 그리고 TV 드라마에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음악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도 < Ne chantez pas la mort 죽음을 노래하지 말라>라는 연극 음악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프랑스 인들은 쟝 로제 코시몽을 종합 예술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음악인으로서 그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가사와 다양한 스타일을 유연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그의 음악들은 분명 60년대와 70년대의 프랑스 샹송을 대표할만한 것들이다. 특히 캬바레에서 시 낭송과 노래를 하면서 싸하기 시작한 레오 페레와의 우정은 그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을 끼쳤는데 이것은 “Monsieur William”, “Ne Chantez Pas La Mort”, “Le Temps Du Tango 탱고의 시간”, “Vieux Chagrins 오래된 슬픔” 같은 곡들로 현실화 되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Jean Roger Caussimon: L’integrale 1970-1980>은 지난 해 많은 프랑스의 예술적 대중 음악 앨범을 발매해 온 Saravah 레이블에서 기획한 것으로 쟝 로제 코시몽의 1970년대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8장으로 구성된 박스 앨범이다. 이전부터 노래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코시몽의 첫 앨범이 1970년에 녹음된 <Jean Roger Caussimon Chante Jean Roger Caussimon, 쟝 로제 코시몽이 쟝 로제 코시몽을 노래하다>였으니 이번 박스 앨범에 코시몽의 모든 음악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 8장의 앨범들은 6장의 정규 앨범과 1974년 파리 Olympia 극장 실황 그리고 음악뿐만 아니라 직접 출연까지 했었던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영화 <Le Juge Et L’assassin 판사와 암살자>의 사운드 트랙 앨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들은 모두 원래의 표지와 함께 개별 앨범의 형태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다른 박스 앨범들이 정리에 초점을 맞추느라 종종 간과했었던 감상의 측면을 온전히 살아 있어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그래서 시적인 가사와 클래시컬한 연주가 특징인 프렌치 포크를 기반으로 재즈와 록을 가볍게 반영했었던 코시몽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만약 8매의 앨범의 종합적인 곡 정보를 알고 싶다면 함께 수록되어 있는 수십 페이지 분량의 해설 책자를 참고하면 된다. 이 책자는 영어 버전이 없다는 것이 한국의 감상자들에겐 좀 아쉽지만 다양한 쟝 로제 코시몽의 자료 사진과 모든 가사 그리고 각 앨범의 제작 크레딧을 잘 정리하여 수록하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수의 박스 앨범을 구입한다는 것은 어쩌면 커다란 모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 특유의 우수와 낭만성을 좋아하는 감상자들에게는 분명 해볼만한, 만족의 확률이 높은 모험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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