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글을 쓰게 되면서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한 달을 앞서 산다는 것이다. 매번 다음달 잡지에 실릴 글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니 현실의 나는 지금 이 시각에 있지만 머릿속 생각들은 다음달 잡지를 위해 감상한 앨범들과 함께 이미 10월에 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의 시간이 10월에 있을 때 나는 이미 11월의 시간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한 달을 앞서 살아가다 보니 다른 누구보다 가을이 먼저 다가왔다. 사실 아직도 길에는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실제로 긴 팔 셔츠를 입고 다니는 내가 무덥다는 생각을 할 정도니 지금 가을을 느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한달 뒤의 오늘을 생각하며 가을과 재즈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가을과 재즈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좀 해보았다. 그러다가 자유롭게 쓰라는 잡지사의 말을 믿고 최근에 우연히 들으면서 생각하게 된 두 곡의 가을 노래와 그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가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곡이 있다면 당연히 “Autumn Leaves”다. 자끄 프레베르의 시에 조셉 코스마가 선율을 붙인 이 곡은 프랑스의 이브 몽땅의 노래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는데 아직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추억이 어린 곡이다. 이 곡의 가장 대표적인 연주는 여러분도 많이 들었으리라 생각되는 캐논볼 아들레이의 <Something Else> (Blue Note 1958)에 담긴 연주일 것이다. 10분이 훨씬 넘는 이 곡은 편곡이나 연주 모두 다른 편곡의 전형이 될 정도로 훌륭한데 내가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이러한 음악적인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러한 음악적 사실들이 내 가슴 속에서 마술을 부려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게 만들기에 좋아한다. 이 곡에서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잠시 몇 발자국 걷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걸어가기를 반복하는 어느 사람의 뒷 모습이다. 이 이미지는 이 곡을 십수년 전에 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생긴 것으로 지금까지도 나는 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매 감상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그렇게 내린 결론은 이 곡의 부드러운 리듬과 베이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간 긴장감이 감도는 인트로가 끝나면 순간 단절의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곧바로 억제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이 테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 아래 흐르는 샘 존스와 아트 블레키의 리듬 반주를 들어보라. 거의 사람이 편하게 걸어가는 속도와 맞먹는 리듬이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간결하게 테마를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는데 그 연주가 은밀히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에 갑작스레 멈추다가 다시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연주가 내 안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래서 한참 길위에서 음악을 들었을 무렵 이 곡을 여러 거리에서 들어보곤 했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길에서도 들어보았고 또한 파리까지 가서는 샹젤리제 거리, 콩코드 광장. 튈르리 공원,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인적이 많이 않은 가을 일요일에 들어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말 낙옆이 하나 둘 떨어지는 그 길을 걸으며 이 연주를 들으면 이 연주자들이 연주할 당시에 혹시 이러한 이미지를 상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쳇 베이커의 1974년 앨범 <She Was Good To Me>에서의 <Autumn Leaves>는 마일스 데이비스와는 다른 이미지를 준다. 폴 데스몬드, 허버트 로우, 밥 제임스 등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 이 연주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 나는 한 밤에 도시를 달리는 버스 안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이 연주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보다 훨씬 더 속도감이 있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밥 제임스의 키보드가 주는 적당한 울렁거림이 나를 밤의 버스 안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가을은 어디서 나오냐고? 그것은 쳇 베이커나 폴 데스몬드의 연주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이 모든 연주를 담아놓은 사운드 그 자체에서 느껴진다. 70년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안개가 한 겹 음악과 나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그 몽환적 신비감이 깃든 사운드는 점점 해가 짧아져서 밤이 빨리 오는 가을 오후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 연주를 나는 프랑스 체류시 처음 들었는데 실제 프랑스의 가을은 유달리 낮이 빨리 줄어드는데 10월 말경의 오후 5시 정도면 이미 우리네의 겨울과 맞먹을 정도로 어두워진다. 이런 이유로 파리 18구의 허름한 나의 스튜디오로 향하는 버스 창을 통해 식어가는 태양과 함께 하나 둘 무리 지어 떨어지는 낙엽이 보이는 것같다.
한편 가을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10월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또 다른 곡이 있는데 바로 “When October Goes”다. 이 곡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가수로 재즈적인 분위기의 노래도 잘하는 배리 매닐로우가 여러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2:00 AM Paradise Cafe> (Arista 1984)를 만들면서 자니 머서의 가사에 직접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은 사실 제목에 10월이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10월의 노래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가사의 처음이 “10월이 가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10월의 노래가 아니라 11월(초)의 노래가 아닐까? 그럼에도 이 곡을 들으면 나는 10월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눈발이 날리는 가을을 보낸 작사가 자니 머서의 공간은 어디일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내가 이 곡에서 받는 느낌은 위에서 말했던 “Autumn Leaves”와는 다른 것이다. “Autumn Leaves”는 낙옆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우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낙옆이 나의 배경이 되어 떨어지는 낭만의 느낌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 가버린 10월 노래에는 낙옆이 보이지 않는다. 낙옆은 이미 떨어지고 한 두 개의 잎사귀 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계절은 가을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몸을 웅크리게 만드는 그런 시간인 것이다. 나는 이 곡을 배리 매닐로우의 버전으로 10월의 마지막 날 늦은 오후에 길가에 내놓아진 음반 판매점의 스피커를 통하여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의 10월의 마지막 날은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자꾸 머리칼이 날려 흐트러지고 먹다 남은 과자 같은 눅눅한 피곤으로 인해 왠지 스스로가 초췌해 보이는 그런 때였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 많은 사람들과 차들의 소음 속을 걸어가면서도 지나가면서 잠깐 한 소절을 들었던 이 노래의 허무한 느낌이 집으로 가는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이후에 여러 버전으로 이 곡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느낌은 어떠한 버전이건 마찬가지였다. 로즈마리 클루니의 <Sings Lyrics Of Johnny Mercer> (Concord 1987), 낸시 윌슨의 <With My Lover Beside Me>(Columbia 1991)에 담긴 노래로도 들어보았지만 모든 버전들이 배리 매닐로우의 첫 노래와 모두 흡사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올 해 발매된 다이안 슈어의 <Midnight>앨범에 수록된 버전은 좀 다를까 기대를 하고 들어보았지만 역시나 그녀의 아름답고 푸근한 느낌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가버린 시간, 이제 불모의 겨울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하는 그 느낌은 여전하다. <Autumn Leaves>는 우울을 낭만으로 바꾸어 놓았건만 왜 이 곡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일까?
원래 잡지사는 내 개인 이야기와 함께 가을에 어울리는 재즈 곡이나 앨범을 여러 개 소개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데 겨우 두 곡이라니! 이렇게 귀중한 지면을 내 쓸데없는 개인 이야기로만 채운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을이라는 정서적 화두를 소재로 앨범 몇 장을 건조하게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이기적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사람이 바뀌고 장소가 변하고 사랑이 식고 그리고 심지어 나 스스로가 달라져도 지나간 추억은 흐릿해 질 뿐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추억은 나의 기억 어두운 곳에 머무르면서 회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나와 함께 있었던 음악은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나의 삶을 몇 분 안되는 짧은 시간 속에 잘 응축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내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를 상기시킨다. 나는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 다시 음악을 듣는 나의 지금 이 시간도 기록을 하는 중이라고. 이러한 자신의 과거를 증명하는 곡을 재즈건 아니건 누구나 한 두 곡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한 곡들 중에 나는 가을과 관련된 곡 두 곡을 소개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그렇다면 어떤 곡을 말할 수 있는가? 재즈를 듣는 당신, 이제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오래 들을 것처럼 구입해 두었다가 이제는 듣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과거의 재즈 음반들을 하나씩 들어보라.
낯선 청춘님만의 음악과 기억에 대한 글이 여기 있었군요!^^
기억을 통해 의미가 부여된 곡…그 곡을 들을때마다 다시 그 의미가 재현되는..
글이 단숨에 쫙…읽히네요.
이런 글은 한계가 있어도 쓸 때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ㅎ 그런 식으로 쓴 책이 <재즈와 살다>였구요.ㅎ
아하! 다른 글이 궁금해집니다. 책방에 가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시길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