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피아노 연주자 스테판 올리바의 지명도는 국내에서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만약 현재 프랑스 재즈 피아노를 음악적으로 대표하는 연주자를 꼽는다면 필자는 과감하게 브누아 델벡과 함께 이 스테판 올리바를 언급할 것이다. 실제 BMG 프랑스는 여러 영화음악을 연주한 피아노 솔로 세트 앨범을 기획하면서 폴 블레이, 스티브 쿤, 마르시알 솔랄 등의 명 연주자들과 함께 스테판 올리바를 그 앨범의 주인공 중 하나로 선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활동들은 모두 어느 하나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스테판 올리바 역시 대부분의 유러피안 재즈 연주자들의 경우처럼 정식으로 클래식을 공부했다. 그래서 그의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피아노 연주, 은밀한 대비가 느껴지는 작곡과 편곡에는 클래식적인 색채가 매우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한편 재즈에서 그의 오늘에 영향을 준 부분을 생각한다면 멀리는 올리바 본인이 직접 헌정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었던 빌 에반스와 레니 트리스타노를, 그리고 가까이로는 폴 블레이와 키스 자렛을 생각할 수 있다. 언급할 수 있다. 분명 내면적 시정, 공간적 긴장, 폭넓은 개방성이 특징인 그의 피아니즘은 이 네 연주자들의 영향이 크다.
이번에 새롭게 발매된 앨범 <Itinéraire Imaginaire 가상의 여정>은 그의 피아니즘은 물론 뛰어난 작곡과 앙상블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모든 능력, 그러니까 지금까지 솔로, 듀오, 트리오, 집단 연주 등을 통해 하나씩 선보여왔었던 그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앨범이다. “Preface”와 “Postface”로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앨범에서 그는 몇 수를 미리 보고 두는 바둑의 명인처럼 부서질 듯 투명한 음색으로 특유의 함축적인 피아노 연주를 펼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다양한 해석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아 함께 하고 있는 연주자들에게 연주가 아닌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올리바 같은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연주자가 그룹을 이끌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각 멤버들에게 자신의 의도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발현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앨범에서 가장 올리바의 진면모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피아노가 지닌 회색 빛 시성이 아니라 작곡을 현실화하기 위해 각 멤버들을 경제적으로 운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4명의 연주자들은 분명 리더는 스테판 올리바지만 모두 개별적인 해석의 공간을 부여 받고 있다. 그 공간 안에서 각 연주자들은 서로에게 시선을 두며 자신만의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펼쳐 나간다. 매우 복잡하고 세밀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 올리바의 작곡이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완전한 정지가 아니라 유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같은 프랑스 연주자 루이 스클라비의 방법론과의 유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이러한 어긋남이야 말로 이 앨범의 다양한 색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클라리넷과 색소폰의 대위적 조화, 피아노와 드럼의 긴장적 조화 등을 통해 올리바의 음악이 지닌 서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Cecile Seule 혼자 있는 세실”을 감상해 보기 바란다.
아마도 음악 감상을 크게 정서적 감상과 지적 감상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정서적 감상이란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들리는 그대로, 흔히 말하는 휴식의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적 감상이란 매우 진지한 자세로 음악이 발산하는 주파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고민을 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인 감상이 주는 쾌감은 작곡이나 연주의 쾌감만큼이나 크다. 그것은 지적 감상을 통해 감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직접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성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음악에서 생성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크나큰 창조적 쾌감이다. 이러한 지적 감상이 주는 큰 쾌감을 제공하는 앨범이 바로 스테판 올리바의 이번 앨범 <Itinéraire Imaginaire 가상의 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의 “가상의 여정”에 넓은 마음으로 동참했을 때 말이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듣지 못했지만…
다른 곡들을 들어보니 단순히 서정적이지만 않은 서늘한 아름다움이랄까?..그런 느낌이 듭니다.
시나 정물화 같은 느낌을 주죠. 긴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연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