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피아니스트 존 테일러는 오랜 시간 동안 그룹 Azimuth나, 얀 가바렉, 존 셔먼 같은 색소폰 연주자의 밴드와 드럼 연주자 피터 어스카인이 리드하는 트리오의 멤버로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오랜 시간에 걸쳐 해온 사이드 맨으로서의 활동과 달리 그의 솔로 리드 앨범은 좋은 연주력에도 불구하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02년 스케치 레이블을 통해 발표되었던 <Overnight> 이후로 솔로 연주자로서의 활동이 갑작스레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중 이번 앨범이 그 활동의 절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Overnight>이나 <Rosslyn> 같은 리드 앨범에서는 은연중에 Azimuth나 피터 어스카인 트리오의 색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그만의 피아니즘을 일괄할 수 있는 앨범이야말로 이번 솔로 피아노 앨범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피아노 솔로 연주는 이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연주들과는 자못 다른 면을 보인다. 사실 이전의 그의 피아노 연주는 빌 에반스에 견줄만한 내면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그의 피아노는 자유를 획득한 만큼 무척이나 외향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존 테일러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를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이 앨범에서 그가 연주하는 곡들은 새로이 이 앨범을 위해 작곡된 곡들이 아니라 피터 어스카인 트리오나 존 셔먼과의 듀오 연주, 그리고 그가 리드하는 트리오를 통해 이미 연주되었던 곡들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해온 각 곡들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곡에서 그의 피아노는 풍부한 화성을 기반으로 강약의 대비, 절묘한 분위기의 전환 등을 통해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그만의 상상력을 실현해 나간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그는 그에게 내재된 다양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색다른 피아노 주법을 사용한다. 예로‘Vaguely Asian’이나 ‘Homemade’같은 곡의 연주에서 그의 피아노는 타악기처럼 두드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기타처럼 긁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연주는 단순한 생경함을 연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존 테일러가 설정한 곡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미 60대의 문턱을 넘어선 그이기에 최근의 활발한 행보는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이러한 아쉬움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매번 강한 만족을 준다. 마치 그동안 겸손의 상태로 농축되었던 그의 음악이 일시에 분출되는 것만 같다. 그것의 좋은 예가 바로 이번 <Insight>다.